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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날의 안녕 Sep 26. 2023

넘어져야만 하늘을 볼 수 있는
돼지처럼

나도 넘어지면서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세상을 보게 되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 하나도 버릴 게 없는 동물이 있어.

그게 뭔지 알아?

사람, 그리고 돼지


(중략)


그런데 진짜 가여운건 말이야. 돼지는 고개를 들 수가 없어서

평생 땅만 보고 살아야 한다는 거야.


오직 돼지가 하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

그건 바로 넘어지는 거지


그래 맞아

넘어져봐야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 거야

돼지도 사람도


-드라마 '나쁜 엄마 '중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던 드라마 첫 화의 내레이션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드라마를 정주행까지 하게 된 '나쁜 엄마'라는 드라마가 있다.

마지막 회차를 볼 때까지도 이 내레이션은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남아 

문장을 계속 곱씹어보게 만들었다.

아마도 그때의 내 상황과 너무 잘 맞는 그 문장을 쉽게 잊기는 힘들었던 듯했다.


고개를 들지 못해 평생 바닥만 보고 살아야 한다는 돼지

처음에는 돼지가 하늘을 볼 수 없겠구나...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면 고개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많은 세상을 보고 살고 있는 것일까?


사람은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고 고개를 들어 하늘도 자유롭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 관념, 습관 같은 것으로 만들어진 

자신만의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간다.

고개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지만 바닥만 바라보는 돼지처럼 

사람 역시 자신이 만들어 둔 세상 만을 보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넘어져야 그동안의 자신이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된다'라는 이 구절은 

넘어져서 세상이 끝난 것처럼 지하로 추락하고 있는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라는 것으로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나 역시 돼지처럼 내가 생각한 것만 바라보며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고 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미친 경주마'처럼 내달리기만 했었다.

옆도 보지 못하고 앞으로만 빠르게 달리기만 하면서 그것이 성공이고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돈을 많이 벌고 어린 시절 내가 꿈꾸던 것들을 이루면서 그것만이 인생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하며 더 많은 부와 성공을 이루기 위해 계속 달리기만 했었다.


그때 부모님께 처음으로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 지인들로부터 자식농사 잘 지었다는

부러움을 듣게도 해드렸었다.


하지만

건강이 악화되며 내가 가진 것들은  순식간에 모두 과거형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딸은 가장 아픈 손가락이 되었고 

잘 지었다는 자식농사는 순식간에 폭삭 망해버렸다.




작년 가을 내가 자살에 실패하고 본가에서 지냈을 때

엄마는 정신이 돌아온 나를 스님께 데리고 갔었다.

불교에서는 살생이 가장 큰 죄인데, 자살시도한 나를 절에 데리고 가는 엄마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두 눈이 퉁퉁 붓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상태에서 찾아간 절에서 

스님이 그저 아무 말 없이 나를 꼭 안아주셨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방에 데리고 가서는 휴지를 하나 가져오시더니

울고 싶은 만큼 울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봇물 터지듯이 터졌고 눈물을 넘어 통곡이 되어

사람이 낼 수 없는 이상한 소리까지 흘리며 맺혔던 한을 풀려고 했다.


스님은 그저 아무 말씀 없이 내 등을 쓰다듬어 주시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동안 정말 많이 울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래도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었다.

휴지 한 상자를 다 비우고 나서야 가슴 안에 쌓였던 것을 

모두 배출한 기분이 들었다.


스님은 그런 나를 보고 한마디 하셨었다.

'넌 이번 일을 계기로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될 거야. 다 괜찮아질 거야.'


민망함과 고마움에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를 하고 나왔지만 

당시에는 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지금 당장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지혜'라니...


익숙하지만 낯설게 느껴졌던 '지혜'라는 말은 오랫동안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후에 나는 한의사 선생님께도 비슷한 이야기를 또 듣게 되었다.



한의원에서 진료를 받던 중, 의사 선생님께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암 환자들을 많이 치료하게 되는데

그들에게서는 유사한 특징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성격이 예민하고 늘 불안해하며 걱정이 많다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나에게 책을 한 권 추천해 주셨다. 

그때는 몰랐는데 책을 모두 읽고 책에 대해서 찾아보니 꽤 유명한 책이었다.


아마도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내용에 큰 공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아 책을 읽기가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책을 2번 읽었고 두 번째 책을 읽으면서는 슬픈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 눈물을 펑펑 쏟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인생을 잘못 이해하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유 없는 나의 걱정과 불안이 나를 병들게 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이혼소송 증거자료를 찾기 위해 2017년도 남편과의 카톡 대화 내용을 보면서

놀랬던 것이 있었다. 

무엇 때문에 불안하다는 것도 없이 '지금 나 너무 불안해'라는 문장이 과거 카톡에

너무 많이 남아 있어서 과거에 내가 이렇게까지 불안에 시달렸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내 커리어의 정점을 달리고 있을 때였고 원하는 일들이 정말 다 잘 되던 때였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계속 불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또한 나는 지독하게도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하는 일이 잘 될 때도 나는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사고를 더 많이 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말이 있다.

예전에 남편이 사고 싶다는 벤츠의 비용을 모두 입금을 해준 뒤에 내가 했던 말이다.


"벤츠 사줬다고 계집애들 태우고 다니면서 바람피우면 죽을 줄 알아."

 

큰 마음먹고 차를 사주면서 고작 남편한테 한다는 소리가 겨우 이따위 말이었다.

차를 사주며 남편의 행복을 빌어주는 예쁜 말도 많았을 텐데..

왜 나는 저렇게 밖에 말을 하지 못했었는지... 예전 내가 했던 행동이 지금은 너무 부끄럽다.


마치 남편은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듯이

벤츠는 현재 상간녀의 출퇴근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을 나는 내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버렸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라는 책을 계기로 불안함과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종교를 잘 믿지 못하는 성격이었지만 지금은 인간의 삶에 종교가 왜 필요한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뻔한 소리라고 듣기 싫어했던 성경과 경전의 내용이 인간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는지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니 그동안 나는 참 어리석게도 

살았던 것 같다.


기도를 왜 하는지도 몰랐었고 밥 먹기 전에 왜 '감사하다'라는 기도를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내가 지금은 왜 인간이 기도를 하는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불안함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내게 일어나는 작은 변화를 병원에서 이야기했을 때

한의사는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죽을 정도로 큰 고비를 넘기면 사람은 변하게 됩니다'라고

웃으면서 답을 했다. 


불안함에서 벗어나고 마음공부를 하면서 남편에 대한 미움과 원망, 분노의 감정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남편을 용서했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라 그럴 수는 없지만 매일 곱씹어보던 남편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사라진 것만으로도 자유를 얻은 기분이 들었다.

3건의 소송과 고소, 그리고 서면에 적힌 나를 자극하는 글들로는 이제는

화를 내거나 흥분하지는 않는다. 그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뿐이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얼마나 나에게 나쁜 에너지를 주는지를 처음 알게 되었고

17년 전 나를 괴롭힌 사람 때문에 생겼던 불면증도 사라지게 되었다.


처음으로 수면제를 먹지 않고 숙면을 하고 일어났을 때 

과거의 나쁜 기억에서 해방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불행한 사건이 폭풍처럼 몰아쳤을 때 나는 원인을 찾기 위해 나를 괴롭혔었다.

어떤 이들은 '그저 그건 사고 같은 거라고...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나라고'이야기하기도 한다.

난 솔직히 뭐가 맞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저 나는 모든 일이 일어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으로 나는 해석하려고 한다.

넘어져도 나는 제대로 크게 넘어져 버렸다. 

그렇게 크게 넘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다른 세상을 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시간을 보내면서 너무 힘들었지만 

분명 이런 시련을 주신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투병과 3건의 소송, 고소 이 모든 것을 하는 것도 내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나는 이 시간을 단순히 견디거나 버티는 것으로 보내지 않는다.

고통스러워만 보일 것 같은 삶 속에서도 모순되게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고 웃을 때도 많이 있다.

걱정과 불안으로 이 시간을 견딘다고 나에게 좋은 결과가 오는 것은 아니니

내가 해야 할 것들을 하면서 담담히 잘 살아가고 있다.



이사 온 지 3년 만에 처음으로 

집에서 밤이면 아름다운 풀벌레와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지를 알게 되었다.

밤이면 아름다운 음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 소리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여행 온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소리가 꽤 크게 들리는데도 난 지난 2년 동안 그런 소리가 들리는지 조차도 모르고 살았다.

집값 시세는 매일같이 보면서 정작 내가 살고 있는 것들은 누리지도 못하고 산 바보였다.




앞으로는 예전처럼 바닥에 떨어진 사료만 주워 먹기 위해 

고개만 숙이고 있는 돼지처럼 살지는 않을 생각이다.


넘어져도 대차게 넘어진 나는 아름다운 하늘도 바라보며 

구름의 미묘한 변화와 해, 달, 별까지 모두 느끼며 여유롭게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돼지로 당분간은 살고 싶다.






*

저를 위해 기도를 해주신다고 글 남겨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종교는 없지만 저도 매일 감사기도를 하고 있어요.

인간의 간절한 소망은 결국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더 아프신 분들 죽음의 공포와 싸우시는 분들을 위해 

기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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