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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날의 안녕 Sep 16. 2023

위로가 필요할 땐  
따뜻한 국에 밥을 말아먹는다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밥알을 씹어 본다

요란한 알람 소리에 간신히 눈을 떠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 8시

내 알람은 아침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20분 단위로 맞춰져 있다.

아침 기상을 거의 하기 힘든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8시를 기상시간으로 맞춰두는 것은

기분 좋게 아침에 일어나 아침공기를 마시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날은 알람을 끄는 것조차도 힘들었기에 몸 상태가 아주 좋지 않음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다.

온몸에서 열이 느껴지고 추웠다. 알람을 끄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웠다

하지만 알람을 계속 끄면서도 그날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은 잊지 않았다.


브런치 글 작성과 관련하여 남편이 형사고소를 했고

그날은 경찰조사가 있는 날이었다.

오후 3시에 조사가 있지만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지만 정작 내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누가 약을 좀 가져다주면 좋을 텐데...

집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고 나는 식탁까지 걸어갈 기운도 없었다.

전날 밤에 미리 물과 약을 침대 옆에 두고 자는 것을 잊어버린 것을 후회하면서 

눈을 감고 상태가 나아지길 기다렸다.


그렇게 핸드폰을 붙잡고 다시 자고 겨우 몸을 일으키니 오후 12시였다.

아직 여름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많겠지만 일교차가 큰 이런 날은 나 같은 환자에게는 정말 힘든 때이다.

통증뿐만 아니라 고열에 오한이 느껴져 두꺼운 카디건을 입고 식탁에 앉아서 

통증약 뭉텅이와 정신과 약, 그리고 내과에서 처방받은 많은 감기약까지 

한입에 들어갈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많은 양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이어서 한약까지 먹고 

앉아 있던 식탁에서 내려와 바닥에 뻗어 버렸다.

약을 먹고 시간이 조금 지나 약 기운이 퍼지기를 기다렸다.

매일 이렇지는 않지만 몸 상태가 좋지 못하면 하루의 시작은 늘 이런 식이었다.


고양이가 옆에서 계속 울지만 아이를 달래줄 힘이 없어서 대꾸만 겨우 해주고 누워있었다.


일어나면 보통 간식을 챙겨주는데 간식을 주지 않고 누워버리니 간식을 달라고 항의를 하는 것이다.

힘을 내서 일어나 간식을 챙겨주고 싶지만 그날 내 몸은 전날의 피로와 감기가 겹치며 

기력조차 없었기에 아이가 좋아하는 트릿을 주지 못하고 바닥에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보통 눈을 뜨면 나의 유일한 동거묘인 아이와 나는 서로의 안위를 살피고 

아이의 엉덩이를 '통통'해준다. 엉덩이 통통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충분히 엉덩이를 만져주고

식탁에 와서 약을 먹고 아이가 식탁 위에 올라오면 트릿을 작게 잘라 입에 쏙쏙 넣어준다. 

흔히 어른들이 말하는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갈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는’ 

그런 행복한 시간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할 수 없는 날이 오면 아이도 기다려주지 못하고 칭얼거린다.

아이의 칭얼거림이 미안하기도 하면서 귀찮기도 하고  죄책감이 든다.

이럴 때는 내가 이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지,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데

고양이를 내가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면서 내 욕심에 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난 이 아이가 없으면 절대 못 살 것 같은데 몸이 이런 상태일 때는 

아이를 케어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걱정이 많이 된다.

그래서 더 이상은 아프지 않기를 정말 더 더 많이 바란다.


그렇게 누워 있다 보니 1시가 넘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의 간식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식탁 위에 올라와 간식을 기다리며 내가 입 안으로 쏙 넣어주면 작은 트릿을 오물오물 씹어 먹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간식이 먹고 싶었을 텐데.... 꽤 긴 시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한 마음뿐이다.


2시 30분에는 집에서 나가야 하니 대충 세수만 하고 외출 준비를 했다.

입맛은 없어도 뭐라도 먹어야 할거 같아 냉동실에 있는 빵 한 조각을 꺼내 데운 뒤 억지로 입으로 삼켰다.

돌발통증이 예상되는 몸 구석구석에 파스를 붙인다. 

갑작스럽게 밖에서 돌발통증이 발생하면 약으로도 제어가 안된다.

그래서 통증이 발생할 것 같은 곳마다 파스로 몸을 도배하는데,

이 파스 값은 의료보험도 되지 않아 비용부담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이상하게도 내가 법원에 갈 때마다  꼭 비가 조금씩 왔다.

경찰서 가는 날에 맞춰 마치 비가 내리는 기분이었다.

집에서 많이 멀지는 않지만 주차할 자리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일찍 집을 나섰다.

긴장감이나 걱정되는 마음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냥 그런데를 드나드는 현실의 내가 한심할 뿐이다.


경찰서에 도착하고 오라는 곳으로 찾아갔다.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는데 수사관은 조사실로 나를 이끌었다.

조사실은 TV에서 보던 것과 비슷한 어둡고 카메라가 있고 컴퓨터가 한 대 있는 밀폐된 그런 공간이었다.

피의자를 위한 여러 프로세스를 설명을 듣고 서명을 했다.


수사관은 수사를 받을 수 있는 정도로 컨디션이 괜찮은지 물었다.

그곳에 도착하니 몸에서 열이 너무 많이 났고 오한으로 몸이 덜덜 떨렸다.

오전에 병원에 들러 링거를 맞고 싶었지만 그럴 기운조차 없어 일어나지 못한 게 후회가 됐다.

좋지 못하다는 답변을 하자, 수사관은 그럼 다음에 하자고 하며 급한 것은 아니니

다음 일정을 잡아도 된다고 했다.


그 말에 조금 고민을 했지만 다시 이곳을 또 오고 싶지는 않았다.

정말 힘들게 왔는데, 또다시 약속을 잡고 오는 것도 싫었고 사실 약속을 미리 해놔도

내 몸상태가 언제는 좋고 나쁜지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문제이기에 미룬다고 해서

가장 좋은 컨디션에서 조사를 받을 수 있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난 그냥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피의자가 조사를 받는 과정에 아파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들에게도 큰 일이기 때문에

일정을 미룰 것을 권했다. 조사는 약 2-3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했기에 정말 고민이 되었다. 

끝나고 빨리 병원을 갈 생각이었는데 병원에 가지 못하게 된 게 아쉽기도 했고 

긴 시간 조사를 받는 게 부담도 되었다.


조사과정에서 묘하게 친절과 배려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유도신문이라고 느껴지는 질문과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반응과 질문도 꽤 있었다. 

수사관과 나 사이에 언성이 높아지는 순간도 있었고 남편의 고소 내용에 어이가 없고 기가차는 일도 있었다.

가장 어이가 없었던 질문은 ‘글을 쓰고 싶으면 혼자서 보면 되지 왜 공개를 하냐’는 질문이었다.

글을 쓰고 공개하는 행위가 이상한 행위인가?라는 것에 대해서 처음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고 공개하는 게 이상한 범법행위인가요?'라고 되물었다.

수사관은 소리를 지르며 '질문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그들의 수사기법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룰은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고소된 글 3개의 전체 내용을 전혀 읽어보지도 않고 고소인인 남편의 진술만을 질문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 나로서는 황당했다.

사건에 대해서 고소고발이 이루어졌다면 먼저 사건에 대해서 파악을 하고 

피의자 조사를 해야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생각을 했는데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처음으로 변호사를 대동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적어도 내가 찾아본 자료를 통해서 상대의 명예훼손에 대한 것은 글의 전체적 문맥이 중요하다고

되어 있었다. 글의 전체 내용을 살펴보지 않은 채 특정 '단어'를 확인하는 단계를 거치고 난 뒤

어떤 방식으로 판단을 할지, 의문이 남았다.


3시에 시작이 되었는데 조사가 끝나고 나오니 꽉 찬 주차장이 텅 비었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비는 여전히 많이 내렸고 차 안에 들어오니 안전한 내 공간으로 들어온 기분에 

서러움이 폭발해 버렸다. 


와이퍼가 움직이지 않는 차 안은 빗물이 차를 모두 감싸고 있어 밖이 보이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눈에 눈물이 고여버렸다. 그날은 크게 울고 싶었다.

그래도 울지 않고 바로 출발을 했지만 위로가 필요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벅차게 나에게 일어나는 사건을 견뎌내는 중에 지금까지 위로를

받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그날 유독 위로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난 누구와도 연락을 하고 지내지 않고 있고 내 개인적인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가족 외에는 없다.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계속 망설여졌다.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더 많이 걱정할 엄마가 또 걱정이 되니

솔직한 마음을 내비칠 자신이 없었다.




집에 금방 도착했다.

나의 아이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맞이해 준다.

아무리 힘들었어도 나를 반기는 아이를 위해서는 에너지를 가득 채워 예쁘게 아이를 불러준다.

우리의 인사는 스크래쳐를 하는 아이의 엉덩이를 통통 두들겨 주며 몇 번이고 아이를 쓰담하는 것으로

애정표현과 반갑다는 인사를 한다. 아무리 슬퍼도 웃으면서 아이의 몸을 쓰다듬어 준다. 

그 손등 위로 빗물처럼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싶지만 힘든 상황을 전하고 싶지는 않기에 참아야 한다고 계속 생각했다.

계속 멍하게 의자에만 앉아 있다가 참고 있던 전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를 받은 엄마의 목소리는 분주하게 느껴졌다. 반대로 내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지난주에 아버지가 폐렴으로 입원을 하셨다는 소식을 나는 그때서야 듣게 되었다.


'아... 정말 나는 내가 너무 한심하다'


엄마는 간병으로 지쳐계신 듯 느껴졌고 간단히 근황으로 경찰서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만 전했다.

'엄마 나 너무 힘들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눌러서 삼켜버렸다. 

이 상황에서 내 아픔을 엄마에게 전이시키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누가 부르는지, 전화를 끊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급하게 나에게 말했다.

'이미 모두 일어난 일이야. 너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마음 단단히 먹어. 얼렁 밥 먹어라.'

그렇게 전화가 끊겼다.


짧은 통화였지만 내가 단단해져야 함을 엄마가 다시 일깨워줬다.


냉장고에서 전에 한 냄비 끓여 둔 미역국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리기 시작했다.

소분해 둔 밥도 꺼내 같이 해동을 했다.

류마니티스내과 의사와 한의사 모두 고기를 통해 단백질 섭취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매번 고기를 먹어야 한다. 

고기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끼니 챙기기도 힘든데 고기까지 같이 먹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갑자기 의사의 말이 생각나 단백질을 위해 냉동실에 있는 닭가슴살을 꺼내 따뜻하게 데워 한상을 차렸다.


뜨끈하게 데워진 미역국에 밥을 말아 입에 한가득 밀어 넣었다.

알알이 흩어진 밥알을 씹으며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조사를 받으러 가서 서러움에 눈물을 뚝뚝 흘리던 

조금 전 내 모습을 떠올려 봤다.


내 모습이 너무 나약하고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왔다.

밥을 먹고 닭가슴살을 질겅질겅 씹으며 생각했다.

'그럼 피의자 주제에 수사관이 따뜻한 위로라도 해줄 거라 기대했던 거니? 

조사를 받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는데... 대체 뭐가 힘들다고 운 거야...'


엄마 말대로 이미 모두 벌어진 일이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내가 아픈 것도 사실이고 하루아침에 정상인이 될 수도 없다.


울면 약해지고 내 감정에 취해버린다.

엄마는 늘 나에게 말했다. 

울지 말라고...


나 스스로 다짐하지 않았던가...

어떤 비바람에도 머리카락 한올 흔들리지 않기로 한 것을....


대접에 말아둔 밥과 국을 모두 비우면서 생각을 했다.

흔들리지 말자고...


오한이 느껴져 힘든 밤을 보내야 했지만 

약을 잔뜩 먹고 자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난 죽지 않는 병에 걸렸다.

그러니 두려워할 것도 없다. 

사람은 누구나 아픈 때가 있다. 

평생 아프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는데 뭐가 서럽단 말인가...


위로가 필요하고 마음이 약해질 때는 

밥을 한가득 입에 넣고 씹어보기로 했다.




*

제가 작성한 모든 글은 소설이 아닌 제가 직접 경험한 일을 중심으로

작성한 에세이 입니다. 

거짓이나 과장 또한 없는 모두 실제 저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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