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내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다
남편과 내가 처음 만난 건 내가 서른일곱이 되던 해였다.
엄마는 속을 썩이는 딸 문제로 절을 찾았다.
불공을 드리던 중, 내 사연을 들은 스님은 비슷한 아픔을 가진 한 남자가 있다며
소개를 권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나갔다.
나는 결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여러 번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스물아홉에 나는 결혼을 한번 했었다.
그리고 서른 즈음, 신혼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혼을 했다.
그 뒤로 나는 누구와의 만남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회사를 다니며 쥐 죽은 듯 숨어 지내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이혼이 죄도 아닌데 왜 숨어서 살고 있냐며 사람도 만나고 즐겁게 살라"며
나를 보며 안타까워했었다.
당시 나는 회사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준비하던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하던 일이 잘 되지 않자, 부모님의 걱정은 더 커졌다.
그때 내가 조금이라도 일이 잘 되고 있었다면 "더 이상 결혼은 하지 않겠다"는 내 의지를
좀 더 강하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짧디 짧은 결혼 생활 끝에,
혼자가 되어 일만 하며 살아가는 딸.
부모님 눈엔
가정을 꾸리지 못한 삶이 마치 '불안정'자체로 보였던 것 같다.
결국 남편과 만나게 되었다.
남들은 '의사 남편 만나서 팔자 좋게 살았구나'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남편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남편은 늦은 나이에 의대 공부를 막 마친 상태였다.
사람들은 의사면허만 있으면 큰돈을 버는 줄 알지만
남편은 공부는 잘했는지 몰라도 돈 버는 재주는 없었다.
게다가 그가 선택한 분야는 기초의학이었다.
환자를 직접 치료하지 않는 기초의학 분야는 대부분 수입이 적어 의사들이 꺼리는 영역이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교수였던 것도 아니었다.
비전임으로 이름뿐인 교수직,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임교수가 되기를 꿈꾸던 시절이었다.
억지로 나간 자리였지만 그래도 서로 이야기가 잘 통했다.
나 역시 박사과정을 하며 여러 불합리한 일을 겪다가 결국 학위를 못 따고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래서 공감대가 잘 형성되었고 내 상황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생각에 호감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다.
지금은 이렇게 되었지만 사랑이라는 걸 한다고 생각도 했었다.
양가 부모님이 모두 아는 상태로 만났기 때문에 소개팅의 결과를 두 집 모두 궁금해했다.
하지만 결혼에 대한 압박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만남을 더 이상 갖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고 조용히 연애를 이어갔다.
연애 기간 1년이 지나면서 서로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고 작은 다툼이 잦아졌다.
그리고 관계는 점점 느슨해졌다.
그렇게 질질 끌며 만남을 이어가는 게 나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결혼을 하든, 헤어지든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었다.
처음으로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그는 경제사정이 좋지 못해 결혼은 힘들다고 했다.
빚이 있고 소득도 턱 없이 적어, 평범한 삶을 원하지만 지금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는 지긋지긋한 공부만 끝나면 조금은 여유롭게 살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비전임으로 첫 임용된 대학에서 처음 받은 월급은 300만 원.
대출상환, 월세, 부모님 용돈으로 쓰고 나면 통장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나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박사과정을 하면서 교수의 월급 수준은 이미 알고 있었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여유롭다는 건 환상'
그건 내가 먼저 깨달은 현실이었다.
내가 박사과정 때 알게 된 사실을 그는 급여를 처음 받고서야 알게 된 셈이었다.
늦은 나이에 의대공부를 다시 시작했지만
부모님의 지원도 없이 고시원 생활을 하며 고된 공부를 마쳐야 했다.
그때 그가 바라본 친구들은 이미 결혼해 자식도 낳고
대출로 산 아파트에서 주말마다 가족과 나들이를 다니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평범한 삶을 무척이나 갈망했다.
왜 나는
그 말을 듣고도 헤어지지 않았을까?
왜 그때, 놓지 않았을까?
그때 내 결혼결정은 신념보다 연민에 가까웠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누군가 말해줬다면
나는 나만 생각하는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는 지금과 달랐고, 나는 헤어지지 못했다.
결국 결혼을 선택하고, 내가 경제적 책임을 지겠다고 제안했다.
둘이 함께 하나씩 만들어가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나는 결혼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의 단점을 평생 감당할 수 있을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그의 상황과 불안정한 미래까지 내가 안고 갈 수 있을지.
하지만 가장 큰 잘못은
결혼을 하면서 나를 위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생활 내내
나는 남편의 성공을 위해 나를 지웠다.
지 팔자 지가 꼰 거다.
팔자를 내가, 정말 정성껏 망쳐놨다.
나는 내가 뭐라도 되는 줄 착각하고 있었다.
남의 인생을 위해 나를 던져도 괜찮은 줄 알았다.
정작,
나를 지킬 줄 몰랐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