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성공이 곧 우리의 행복일 줄 알았다
그렇게, 결혼을 하며 나는 호구가 되었다.
내가 가진 돈 1억과 8천만원 전세자금 대출로 1.5룸 오피스텔을 얻었다.
가구와 가전은 내가 쓰던 것들이었고 신혼여행도 저가항공으로 일본여행을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남편보다 내 소득이 세 배 이상 높았지만, 불만은 없었다.
부부라면 모든 것을 함께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대출 8천만원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모두 상환을 했다.
"대출 없이 살아야 저축도 하고, 언젠가는 더 넓은 집으로 갈 수 있다"
그 희망 하나로, 악착같이 살았다.
10평도 안되는 오피스텔에서 매일 김치찌개를 끓여 먹었지만 그 시절, 우리는 꽤 행복했다.
아니, 나는 그렇게 믿었다.
결혼을 하며 내 일이 잘 풀리기 시작한 반면, 남편은 교수 임용에서 연이어 탈락을 했다.
좌절하는 그를 안아주며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언젠가는 교수가 될 거라는 희망으로 각종 부당한 대우를 감내해야만 했다.
결국 남편은 괴롭힘에 못 이겨 학교를 그만두었다.
나는 남자라고 해서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돈은 내가 벌면 되니 그에게는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응원을 하며 기다려줬다.
그렇게 남편은 백수가 되었다.
시간이 많아진 그에게 자신을 브랜딩하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줬다.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니, 지금 시간이 많을 때에 책을 쓰라고 조언을 했다.
그는 5개월 간 집에서 책을 썼고 계획대로 책이 출간되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드디어 그는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강연과 인터뷰도 많아지고 임용에서 두 번 떨어진 학교에서 전임교수 자리를 제안받았다.
그는 마침내 교수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남편을 위해 살았다.
그는 자신이 타는 차가 창피하다며 차를 사달라고 했고 나는 벤츠를 현금으로 사줬다.
주변에서는 미쳤다고 했지만 나는 그저 능력있는 아내가 되고 싶었다
집값이 오르기 전 투자하려던 오피스텔 1채를 남편의 명의로 매수를 했다.
계약서를 찍어 보내며 "선물이야"라는 농담도 했다.
그땐 이혼이라는 단어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혼소장에는 벤츠와 오피스텔이 남편의 재산으로 적혀 있었다.
그 재산이 내 돈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증거들을 울분을 토하며 제출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그건 자기 것이라고 주장을 했고
결국 이혼소송 중에 벤츠는 팔아버렸다.
소장을 보내던 그때부터 현재까지 그는 자신이 의사라는 이유로 소득이 나보다 더 높다고 주장을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소득이 높아진 시점은 내 건강이 무너지기 시작한 그때부터였다.
나는 결혼생활 6년동안 생활비를 딱 10개월 받았다.
그마저도 내가 아파서 일을 할 수 없게 된 뒤 겨우 요구해서 받은 돈이었다.
생활비를 받아도 돈을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돈을 모아서 아파트 대출금을 상환하라고 꼬박꼬박 돈을 보내줬다. 하지만 그가 아파트 대출금을 갚지 않고 돈을 다른 곳에 은닉했다는 사실을 나는 이혼소송이 시작되면서 알게 되었다.
지난 6년간 나는 그의 성공을 위해서 내 시간과 재능, 건강과 돈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부교수로 승진한 지 6개월만에 그는 나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나는 처절하게 이용당하고 버려졌다.
오랜 시간동안 가스라이팅과 경제적 착취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내했던 것이다.
왜 나는 지난 시간동안 나를 위한 선택을 하지 못했을까?
왜 '우리'라는 이름 아래, 내 것을 다 포기했을까?
내 어리석음과 착각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내가 너무 수치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