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나락에서 마지막 선택을 했었다
남편이 집을 떠난 뒤로 내 안의 시간은 멈춰버렸다.
창밖에선 추석 연휴를 즐기는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함께 계절이 흐르고 있었지만, 내게는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멈춘 듯한 고요만이 가득했다.
나는 어떤 미동도 없이, 그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동안 계속해서 악화된 통증 속에서 매일이 인생의 최악이라고 느껴지는 바닥 끝을 버티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 고통이 과연 언젠가 끝날 수 있을까?"
내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절망 앞에, 우울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희망을 붙잡기 위해 애썼다.
몸이 불편해도 가족과 가깝게 지내며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상을 찾아보며 '아프다고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품어보기도 했다.
그래, 이 통증을 받아들이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보자고, 스스로 다짐도 해봤다.
어떤 날은 컨디션이 조금 괜찮아지면 '나아지고 있는 걸까?' 하는 작은 기대를 갖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어김없이 들이닥치는 격렬한 통증 앞에서 아무 힘도 쓰지 못한 채 허무하게 사라지곤 했다.
다시 일어서려는 노력과 좌절이 계속해서 반복되면서 나는 내가 이미 인생의 바닥까지 떨어졌다고 믿었다.
더 이상 무너질 곳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 바닥 아래에 끝도 보이지 않는 지하가 있다는 걸 아직 몰랐던 것이다.
그 지하로 나를 단숨에 끌어내린 건 바로 그의 이혼 요구였다.
아프다는 이유로 외면받고, 삶의 끄트머리에서 유일하게 붙들고 있던 관계마저 벼랑 끝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날 이후 나는, 바닥을 뚫고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그동안 살면서 참 많은 시련을 겪으며 버텨왔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제는 어떤 힘든 일이 와도 견뎌낼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마치 그 자신감을 시험이라도 하듯, 신은 내게 '2 연타'를 날려버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한꺼번에 일어날 수 있지?"
나는 왜 이런 병에 걸려야 했는지, 그는 왜 갑작스레 이혼을 요구하는지.
어떤 것도 인과관계가 보이지 않았다.
정말 살 만해질 때마다 일이 터지고, 좀 숨 돌릴만하면 또 일이 터졌다.
이쯤 되면 인생이란 게 나를 조롱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신을 원망하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가 내게 쏟아낸 독설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너 같은 센 여자가 정말 싫어. 억척스럽고, 구질구질하게 아끼고... 아주 지겨워."
그는 늘 '센 여자'가 싫다고 했다. 연애할 때도, 결혼 후에도 그랬다.
하지만 나는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결혼해서 갑자기 '센 여자'로 변신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싫다면 대체 왜 결혼하자고 했던 걸까?
그는 센 여자는 싫다면서도, 자기 수준에 맞는 교육을 받고 돈도 벌 수 있는 여자를 원했다.
모순이었다.
센 여자의 경제력에 기대어 편하게 살다가, 자기 눈에 더 이상 쓸모없어지자 이제 와서 센 여자라서 함께 못 살겠다고 말한다.
내가 억척스럽게, 구질구질하게, 아끼고 또 아끼며 여기까지 온 걸 그는 혐오했다.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 진짜 구질구질했던 사람은 오히려 그였다.
돈이 하나도 없던 그는, 나중에 돈이 생겨도 싸구려 음식을 계속 먹고, 지금 타는 차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랬던 사람이, 전임교수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벤츠를 사달라며 나를 졸랐다.
물론 그는 예전보다 돈을 더 벌게 되었지만, 그렇게 '부자 흉내'를 할 수준은 아니었다.
아파트 대출도 여전히 많았고 나는 늘 "미래를 위해서 아끼자"라고 말했지만 그는 내 말에 콧방귀만 뀌었다.
소득이 늘었다는 이유 하나로 그는 백화점에서 가격표도 보지 않고 물건을 골랐다.
그에게 아웃렛에 가자고 제안하기도 하고, "그건 너무 비싸"라며 못 사게 말리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내가 이 정도도 못 입냐"며 면박을 줬다.
예전의 그는 나와 함께 소박하게 살겠노라 말했던,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허세로 가득 찼다.
그런 그가
물건을 아끼는 나를 '구질구질하다'라고 '그래서 같이 못 살겠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말했다.
"너 같은 여자와는 도저히 못 살겠어."
그 말 한마디로, 그는 이혼을 요구했다.
그리고 마치 명령처럼,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말은 사실상 이런 뜻이었다.
'네 몸 상태도 엉망이고, 지금 넌 돈도 못 벌잖아. 그러니 고분고분해져. 그래야 내가 너랑 계속 살아줄 수 있어.'
생활비를 줄 테니 순종하라는 협박이었다.
이혼이라는 칼을 들이밀며, 내 절박함을 빌미로 나를 길들이려 했다.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혼자서는 제대로 걷기도 힘들고, 약 없이는 하루도 버틸 수 없는 나에게 '이혼'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그는 나를 조종하거나, 아니면 버리기로 작정한 듯 보였다.
시비를 걸고, 괜히 트집을 잡고, 끝내 싸움을 유도하더니 결국 이혼이라는 최후통첩을 꺼내 들었다.
그런 말을 들은 사람이,
"앞으로는 말 잘 들을게. 시키는 대로 할게. 이혼만은 하지 말아 줘."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도저히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이 사람은 대체 나를 어디까지 더 비참하게 만들 작정일까...'
그 순간, 나는 더는 참지 않기로 했다.
그에게 말했다.
"그냥 꺼져줘."
그는 분노에 차 소리를 질렀다.
"이혼 서류 보낼 테니까, 그렇게 알아!"
그 말만 남긴 채, 그는 문을 쾅 닫고 집을 나갔다.
인기척 하나 없는 집 안에, 전화벨이 울렸다.
명절 잘 보내고 있냐는 엄마의 전화였다.
나는 망설이다가 말했다.
"남편이 집을 나갔어."
예상대로, 엄마는 크게 화를 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꾸짖음을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내가 잘못하지 않았을 때조차, 누군가가 나를 나무라면 엄마는 나를 먼저 혼냈다.
"네가 참았으면 됐잖아."
엄마는 늘 자신을 낮추고, 자식의 잘못을 인정하는 게 가정의 평화를 위한 미덕이라고 믿으며 살아온 분이다.
엄마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나도 안다. 하지만, 그날의 말은 내 가슴을 찢는 비수가 되어 꽂혔다.
남편이 나를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엄마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엄마는, 모든 책임을 내게 돌렸다.
"넌 왜 그렇게 참을성이 없니."
엄마는 폭력을 일삼는 아빠 곁에서 50년 가까이 참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자식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시선 안에서 나는 그저 인내심 부족한 딸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엄마는 아직 남편의 불륜에 대해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늘 점잖고 조용하게 행동했고, 겉으로는 그런 일을 벌일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기에.
그리고, 나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전화를 끊기 직전, 마지막 말을 남겼다.
"엄마... 나 진짜 열심히 살았는데... 인생을 이렇게 밖에 살지 못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전화를 끊고, 그동안 모아 두었던 수면제들과 최근에 처방받은 약들을 꺼냈다.
우울증과 불면증이 있는 나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이 삶을 떠날 수 있는 준비가 늘 곁에 있었다.
사실,
'이렇게 아픈 상태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며 차라리 떠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자주 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던 건, 아직은 어딘가에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살고 싶었다. 아니, 살아내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 내가 믿고 의지했던 단 두 사람에게서 들은 말은 그 어떤 폭력보다 쓰라리고 깊었다.
'나는 앞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무서웠다. 정말 두려웠다.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으니, 유서 따위는 필요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 나를 잡아끄는 존재가 있었다.
내 고양이.
내가 없는 세상에 홀로 남겨질, 이 조그맣고 여린 생명.
자식이 없는 나에게 이 고양이는 자식이고 집에만 항상 있어야 하는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나를 닮아서 예민하다. 환경이 바뀌거나 다른 사람들이 간식을 줘도 잘 먹지를 않는다.
이런 아이를 다른 누군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약을 먹으려고 테이블 위에 약과 물을 두고 앉아 있는데 아이는 테이블 위로 올라와 평소와는 다른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말을 하지 못하지만 그 어떤 위로 보다 따뜻해서 내가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지만 나는 아이에게 정신적으로 의지를 많이 했다.
내가 발견되는 시점을 예상할 수 없기에 최대한 오랜 기간 아이가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사료와 물을 곳곳에 배치를 해두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간식도 지루하지 않게 찾아먹을 수 있게 놔두었다.
약을 먹기 시작했다. 모아둔 약과 새로 처방받은 약들..
이 정도면 충분하게 먹었다고 생각을 하고 반쯤 몸을 뉘일 수 있는 의자에 누웠다.
그리고 아이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
잠에서 깨어 보니 낯선 천장이 보였다. 옆에서는 익숙한 고양이 그루밍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내 머리 위에 딱 붙어 그루밍을 하고 있었다.
왜 내가 여기 있는지, 어떻게 된 일인지 모든 기억이 희미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부모님이 계신 본가였다.
정말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구나.
다시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숨 막히게 느껴졌다.
가족들은 충격에 빠졌고, 명절 연휴는 말 그대로 초상집이 되었다.
그날의 기억은 나에게 없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내가 마지막에 한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급히 남동생을 불러 밤에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고 했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몰라 집에 들어가지 못해 남편에게 전화를 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결국 119에 전화를 걸어 "우울증 환자가 자살을 시도한 것 같다"라고 신고했고, 명절이라 비슷한 사건이 많았는지 경찰도 함께 출동하면서 초동 대응은 빠르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구급대원이 도착했지만 문을 열 방법이 없어, 경찰이 남편과 다시 통화를 시도해 겨우 비밀번호를 알아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모든 상황을 알면서도 그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엄마는 전화를 붙잡고 당장 집으로 오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사람이다."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아무리 마음이 떠나고, 서로에게 상처만 남았다고 해도 한때는 부부였고, 삶을 함께 나눈 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아내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다급한 소식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린 그의 모습을 본 순간, 엄마는 마침내 깨달았다.
내가 왜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그해 여름, 남편과 엄마는 종종 통화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는 내게 충격적인 말을 전했다.
당시에 남편은 '내가 자살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그렇게 자주 했던 사람이, 정작 집에 혼자 남겨진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죽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그 상태로 나를 그대로 방치했다는 건- 결국 바란 게 그거였던 건 아닐까.
내가 스스로 사라져 주기를.
그런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변호사를 통해 그가 제출한 변론서를 보게 되었다.
거기엔 이런 문장이 있었다.
"피고(나)는 자신의 화를 참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한 것에 불과하다."
나는 믿을 수 없어서, 몇 번이고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도대체 누가 ‘화를 참지 못해서’ 목숨을 끊는단 말인가.
그 말은 곧, 너의 생명은 그 정도로 하찮다,라는 뜻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자가, 죽음이라는 절박한 행위를 그렇게 무지하게, 조롱하듯 써 내려간다는 것—
그 문장은 나에게 또 한 번의 살해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도망치는 데 실패했다.
명절 연휴의 마지막 날, 나는 나의 아이와 함께 다시 그 집으로 돌아왔다.
경찰과 구급대원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차례로 정리하고, 청소를 했다.
신은 참, 내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내게 일어난 이 끔찍한 사건을 그대로 남겨두고, 나는 끝내 도망치지 못하게 되었다.
이미 지하 깊숙이 나뒹굴고 있는 몸, 이제는 다시 올라갈 길을 찾아야 한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