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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필요할 땐 따뜻한 국에 밥을 말아먹는다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밥알을 씹어 본다

by 보통날의 안녕

요란한 알람 소리에 간신히 눈을 떠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 8시.

내 알람은 아침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20분 간격으로 반복해서 울리도록 설정되어 있다.


아침 기상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몸 상태지만, 그럼에도 첫 알람을 8시에 맞춰두는 이유는 단 하나.

기분 좋게 아침 공기를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 그것이 내게는 가장 큰 목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은, 알람을 끄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온몸에 열이 돌고, 오한이 몰려왔다. 알람을 끄기 위해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는 것마저 버겁게 느껴졌다.


몸이 전혀 따라주지 않았지만, 알람이 울릴 때마다 나는 되뇌었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야. 반드시 일어나야 해."


남편은 내가 브런치스토리에 쓴 글을 문제 삼아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를 했고, 경찰조사를 받으러 가야 하는 날이었다.


조사는 오후 3시에 약속되어 있었지만,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들러 링거라도 맞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내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누가 약이라도 좀 가져다줬으면 좋겠는데...'


당연히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식탁까지 걸어갈 힘조차 없었다.

전날 밤, 물과 약을 침대 옆에 챙겨두지 않았던 걸 뒤늦게 후회하며 그저 눈을 감고, 상태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핸드폰을 붙잡은 채 다시 잠들었고, 겨우 몸을 일으켜 보니 오후 12시였다.


이렇게 일교차가 큰 날씨는 나 같은 환자에겐 가장 버거운 계절이다.


통증뿐 아니라 고열에 오한까지 밀려와 두꺼운 카디건을 꺼내 입고 식탁에 겨우 앉았다.

앞에 놓인 통증약 뭉텅이와 정신과 약, 그리고 내과에서 처방받은 감기약까지 - 이걸 한입에 다 삼킬 수 있을까 싶은 양을 한꺼번에 털어 넣었다.


그 뒤로는 한약까지 챙겨 먹고, 식탁에서 내려와 그대로 바닥에 뻗어 버렸다.

약 기운이 몸에 퍼지기를 기다리며 가만히 누워 있었다.

매일이 이런 건 아니지만, 몸 상태가 나쁠 땐 늘 이런 식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고양이가 옆에서 계속 울었지만, 아이를 달랠 힘조차 없어 겨우 대꾸만 해주며 누워 있었다.

평소 같으면 눈을 뜨자마자 간식을 챙겨주는데, 오늘은 간식도 못 주고 그냥 누워버리니 아이는 간식을 달라고 계속 보채기 시작했다.


힘을 내서 간식을 챙겨주고 싶었지만, 전날의 피로에 감기까지 겹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좋아하는 트릿 하나 챙겨줄 수 없는 상태로, 바닥에 누운 채 그대로 있었다.


평소라면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나와 아이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다. 나는 엉덩이 '통통'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손으로 몇 번 다정하게 두드려주고, 식탁에 앉아 약을 챙겨 먹는다.

잠시 후, 식탁 위로 올라온 아이에게 트릿을 작게 잘라 입에 쏙쏙 넣어주는 것.

그게 우리 아침의 가장 평화로운 루틴이다.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갈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어른들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절로 이해가 된다. 그만큼 따뜻하고, 나를 살게 만드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런 일상조차 감당할 수 없는 날이 오면, 아이는 더 이상 기다려주지 못하고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그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미암함과 귀찮음이 뒤섞여, 죄책감이 밀려든다.


이럴 땐, 내 몸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내가 과연 이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게 맞는지,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면서 그저 나 혼자 외롭지 않으려는 욕심으로 곁에 두고 있는 건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가득해진다.


하지만 이 아이 없이 나는 절대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데, 몸 상태가 이렇게 나빠질 때마다 내가 과연 아이를 돌볼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걱정하게 된다. 그래서 더는 아프지 않기를, 정말 간절히, 더 많이 바라게 된다.


그렇게 바닥에 누운 채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니 어느새 1시가 넘었다.

겨우 몸을 일으켜 간식부터 챙겼다.

식탁 위에 올라와 기다리던 이 작은 아이는, 내가 입에 넣어준 트릿을 오물오물 씹으며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을 텐데...

먹고 싶었던 간식을 너무 늦게 챙겨준 것이 미안하기만 했다.


2시 30분에는 집을 나서야 했기에, 대충 세수만 하고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입맛은 전혀 없었지만, 빈속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냉동실에 있던 빵 한 조각을 꺼내 데운 뒤, 억지로 입에 밀어 넣었다.


돌발 통증이 예상되는 몸 구석구석에는 파스를 붙였다.

밖에서 갑작스러운 통증이 오면 약으로도 제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미리 통증이 올 만한 부위마다 파스를 붙여 온몸을 도배하듯이 감싸야만 했다.




경찰서에 도착해 안내받은 장소로 향했다.

사무실에서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는 줄 알았지만, 수사관은 곧바로 나를 조사실로 이끌었다.


조사실은 텔레비전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어두운 조명 아래, 천장에는 감시카메라가 있고, 컴퓨터 한 대만 덩그러니 놓인 밀폐된 공간.

피의자 조사를 위한 여러 절차에 대해 설명을 들은 뒤, 몇 가지 서류에 서명을 했다.


수사관은 내게 조사를 받을 수 있을 만큼 몸 상태가 괜찮은지 물었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열이 오르고, 오한 때문에 몸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오전에 병원에 들러 링거라도 맞고 오고 싶었지만, 몸을 일으킬 힘조차 없어 결국 그대로 경찰서로 향한 게 자꾸만 후회되기 시작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자, 수사관은 "무리할 필요 없다"라며 일정을 조정해도 괜찮다고 했다. 급한 사안이 아니라며 다음 일정을 잡을 것을 권했다.


그 말에 잠시 고민이 되었지만 이곳을 다시 오고 싶지는 않았다.

경찰조사를 받기까지 수많은 고민으로 이미 지쳐 있었기에, 다시 일정을 잡아 조사를 받는 건 더 큰 부담으로 느껴졌다.

결국 나는 그냥 조사를 받겠다고 답을 했다.


조사 과정은 묘하게 친절하면서도 불편했다.

겉으로는 배려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지만, 유도신문처럼 느껴지는 질문들이 이어졌고, 듣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할 만큼 날 선 반응도 많았다. 수사관과 언성이 오가는 순간도 있었고, 남편이 제기한 고소 내용을 드는 내내 황당함과 어이없음이 번갈아 몰려왔다.


"글을 쓰고 싶으면 혼자 보면 되지, 왜 공개를 했나요?"

내가 들은 가장 어이가 없었던 질문이었다.


'글을 쓰고 공개하는 행위가 정말 잘못된 일인가?'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글을 쓰고 공개하는 게... 범법 행위인가요?"


그러자 수사관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질문하지 마세요!"


그 말투, 분위기.

그날 조사실에서 가장 낯설고, 가장 불쾌했던 순간이었다.




그들의 수사 방식이 어떤 룰을 따르는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고소된 글 3편의 전체 내용을 단 한 줄도 읽지 않은 채, 고소인의 진술만을 바탕으로 질문하고 확인해 나가는 방식은 나로서는 납득할 수 없었다.


어떤 사건이 고소로 접수되었다면, 먼저 그 사건에 대한 전체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피의자 조사를 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믿고 있던 그런 상식적인 절차와는 전혀 달랐다.


조사실에서 나는 완전히 '혐의가 있는 피의자'가 되어 있었다. 조사를 받기 전까지는, 내 글이 명예훼손 혐의와는 무관하다는 변호사의 조언을 들었기에 걱정은 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고 조사에 임하려 했다.

하지만 수사관의 날 선 태도와 윽박지르는 말투, 계속해서 나를 몰아붙이는 분위기 속에서 점점 내가 뭔가 큰 죄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변호사 없이 혼자 조사실에 있는 지금, 이게 정말 정당한 수사의 절차인지, 저 질문들 뒤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나는 점점 자신을 잃어갔다.


3시에 시작된 조사는 세 시간을 훌쩍 넘겨 끝났다.

조사실 문을 나섰을 때, 주차장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고요한 공간에 빗방울 부딪히는 소리만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차 안에 몸을 밀어 넣는 순간, 마치 세상과 단절된 작은 피난처에 들어온 듯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 안도감 위로, 꾹꾹 눌러왔던 서러움이 터져 나오듯 차올랐다.


와이퍼를 켜지 않은 차창은 빗물로 가득 덮여 바깥 풍경을 가려버렸다. 그 안에서 눈물이 자연스레 고여왔다.

그날만큼은, 정말 크게 울고 싶었다.


그래도 울지 않고 바로 경찰서를 떠났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위로가 간절했다.

숨이 막힐 만큼 벅찬 사건들을 견디는 동안 단 한 번도 위로받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경찰서를 나오는 순간만큼은, 이상하게도 위로가 너무나도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

가족 말고는 아무도.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았지만... 차마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내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면 더 많은 걱정으로 잠 못 이룰 엄마가 또 걱정이 되니 솔직한 내 마음을 내비칠 자신이 없었다.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해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이가 나를 맞이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렇게 나를 기다려주는 아이 앞에서는 마음을 다잡게 된다.

에너지를 모아 예쁘게 이름을 불러주며 꼭 안았다.

그 순간, 아이의 따뜻한 몸을 쓰다듬는 내 손등 위로 빗물처럼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의자에 무너져 앉아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전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 너머로 들려온 엄마의 목소리는 어딘가 분주하고 급해 보였다.

무슨 일이 있는 듯한 느낌에 나는 정작 하고 싶던 말을 꺼내지 못했다.

"엄마, 무슨 일 있어?"


그 순간 엄마는 조심스럽게 아버지가 지난주에 폐렴으로 입원한 사실을 처음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그 말을 처음 들었다.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꾹 참으며 속으로 되뇌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나는 정말, 내가 너무 한심하다.'


엄마의 목소리에서는 간병으로 지친 기색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나는 더 이상 길게 말하지 못하고, 그저 경찰서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만 짧게 전했다.


'나 정말 너무 힘들어.'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눌러 삼켰다.

이 상황에서 내 고통을 엄마에게까지 짊어지게 하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뒤, 엄마는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답을 하며 전화를 끊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급하게 말을 남겼다.


"이미 모두 일어난 일이야. 너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마음 단단히 먹어. 얼른 밥 먹어라."

뚝- 그렇게 전화는 끊겼다.


짧은 통화였지만, 엄마의 말은 다시 한번 나에게 '단단해져야 한다'는 걸 일깨워주었다.


냉장고에서 며칠 전 끓여둔 미역국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소분해 두었던 밥도 함께 해동했다.

류머티즘 내과 의사와 한의사 모두 단백질 섭취를 강조했기에, 매 끼니마다 고기를 챙겨 먹어야 한다.

고기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끼니를 챙기기도 버거운 날에는 고기까지 챙기는 일은 유난히 더 힘겹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문득 의사의 말이 떠올라, 냉동실에서 닭가슴살을 꺼내 따뜻하게 데우고는 조용히 한상을 차렸다.


뜨끈하게 데운 미역국에 밥을 말아 입에 한가득 밀어 넣었다.

알알이 흩어진 밥알을 꾹꾹 씹으며, 조금 전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가서 서러움에 눈물을 뚝뚝 흘리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내 모습이 너무 나약하고 초라하게 느껴져, 실소가 새어 나왔다.

밥을 다 먹고, 질긴 닭가슴살을 질겅질겅 씹으며 생각했다.

'피의자 주제에 수사관이 따뜻한 위로라도 해줄 거라 기대했던 건가? 조사를 받는데 기분 좋을 리가 없지... 그런데 대체 뭐가 그리 서러워서 운 거야.'


엄마 말이 맞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되돌릴 수 없다.

내가 아픈 것도, 하루아침에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도 모두 사실이다.


울면 약해진다.

엄마는 늘 나에게 말했다. 울지 말라고.


대접에 말아둔 밥과 국을 비우며 스스로 되뇌었다.

흔들리지 말자고.


오한이 느껴져 힘든 밤을 보내야 했지만 약을 한 움큼 삼키고 억지로 잠을 청하려 애썼다.


어차피 나는 죽지 않는 병에 걸린 사람이다.

그러니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사람은 누구나 아픈 시기가 있다.

평생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 뭐가 그리 서럽단 말인가.


위로가 필요하고, 마음이 약해질 때는 밥을 한가득 입에 넣고 씹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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