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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샌드백 만들기

by 토리가 토닥토닥

나는 경기도와 인천이 매우 가까운 지역에 살고 있다. 이런 지리적인 요건을 활용한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여름에만 진행하는 특화된 취미활동이 있었다.


하나는 귀신 만나러 밤 12시 자유로를 가는 것과 동시에 파주 출판단지 내 지혜의 숲 3관에 들러 시원하게 책을 읽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일산 호수 공원, 인천 센트럴파크 공원, 청라 공원을 숱하게 다닌 경험으로 한강 나이트 워크에 참가하는 것이다. 이 두 취미의 공통점은 모두 새벽 3시가 절정인 활동이다.


어느 계절을 좋아하냐 묻는다면 찬바람이 뺨을 찰싹찰싹 때리는 겨울이다. 이유는 딱 하나다. 여름이 힘들기 때문이다. 여름철에는 남반부로 겨울철에는 북반부로 옮겨가며 살고 싶은 정도다.


혼자일 때도 많지만 동생과 동행이 즐거운 활동이었다. 같이 귀신 보러 가자고 너도 그 귀신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애교로 보조석에 밀어 넣고 다녔다. 차를 타고 가며 가는 동안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새벽 3시 지혜의 숲 3관


한강 나이트워크도 완주가 목표이기도 했지만 시원한 새벽에 많은 사람들과 안전하게 한강을 걷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다양한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기에도 적격이었다.

밤새 걸으며 밤과 새벽 사이를 즐기던 한강 어느 곳


이런 다양한 활동 찾기는 8년 전 친구의 자살에서 시작됐다. 친구는 정말 똑똑했다.

임상심리를 전공했고, 병원에서 근무했던 친구였다. 밤 12시에 친구 번호로 전화가 왔었다. 두 번째 통화에서 친구 동생이 언니가 화장실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내가 꼭 와야 한다는 친구와의 결혼을 한 달 앞둔 예비신랑 이야기에 전화를 한다 했다. 새벽 2시에 도착한 빈소에는 친구의 웃는 얼굴이 있었다. 나중에 너는 꼭 교수님이 되면 좋겠다며 그 영민함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던 정말 좋아하던 친구였다. 다들 타인 마음의 고통을 발견하는 직업을 가졌어도 정작 본인의 절망은 들여다보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그 빈소에서 그 친구와 함께 어울렸던 청소년 상담을 하던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누나, 인생에는 샌드백을 여러 개 만들어야 해. 한 개만 줄곧 치다가는 지치거나 터지게 되어 있어. 누나도 회사에만 매달리지 말고 취미든, 연애든, 가족이든, 무엇이든 누나를 위한 다양한 샌드백을 만들어. 꼭.” 이 이야기는 마치 죽은 친구와 나에게 해주는 이야기 같았다. 친구 어머니는 처음 보는 나에게 “네가 ○○이 몫까지 잘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른다. 다만 그날 이후 삶의 샌드백에 대해 생각해오고 있을 뿐이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호주로 가버리고 싶은 상황들은 지금도 계속 발생되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나의 자연스러움이 훼손되지 않도록 다양한 샌드백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진행형이다. 그 샌드백들이 한 가지 상황에 매몰되어 범할 수 있는 삶의 오류들을 조금이라도 방지해 주리라는 생각이다. 김애란 작가님(침묵의 미래, 바깥은 여름)의 글처럼 ‘말을 안 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지혜의 숲도, 한강 나이트 워크도 중지되었지만 잘 살고 싶다. 아니, 잘 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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