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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지 못한 사회복지사

by 토리가 토닥토닥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자립생활지원 프로그램은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청소년반, 청년반, 여성장애인반으로 분류되어 운영 중이다. 그리고 이달빛(가명)님은 여성장애인반에 참여하고 있는 29세 된 발달장애인이다.


프로그램이 시작된 5월을 지나 6월로 넘어가자 그녀의 전화 폭주가 시작되었다.

“저 언제 복지관에 가요?”, “가면 무엇을 해요?”, “몇 시까지 가야 해요?” 과 일방적 전화 끊기가 수시로 반복되었다. 달 가까이 하루 기본 10통, 많게는 15통이 넘는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타기관 문의를 통해 알게된 점은 이달빛님에게도 29년 기간 동안 여성이기에, 장애인이기에 겪을 수 있는 경험들이 누적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경험이 있다하여 지금 상황을 이해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전화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들 모색이 나의 머릿속 전부였다.

그리고 6월 3주에는 하루 3번, 직통번호로만 전화하기 등 이 두 가지 만을 약속하는 일주일간 연습을 시작했다. 일주일 후 정말 그녀는 하루에 3번 전화를 하기 위해 노력했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는 횟수도 상대적으로 많이 줄어들었다.

고작 그 일주일간의 경험으로 나 스스로가 참 잘했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뿜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1주일이 아니라 2주간 동일한 방법으로 연습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나의 오산이었다.

몇일 후 전화는 출근 전인 7시부터 폭주하기 시작했다. 미처 받지 못한 전화 메모에는 “선생님이 무서워요. 선생님이 때렸어요.”라는 이야기까지 쏟아져 나왔다. (여기서 선생님은 필자다. 엉엉) 있지도 않았던 공포와 폭력의 범주 안에 내가 있다는 것에 아침부터 멘붕이 왔다.


출근하자마자 통화한 9시 1분의 전화에서 약속을 잡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렸다.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과 온몸으로 “너를 만나기 싫어”라고 거부하는 그녀와의 대면은 나에게도 쉽지 않았다. 이달빛님이 거짓말해서 속상하다는 표현에 잠시나마 손바닥으로 비는 행동을 보이고는 다시 굳은 자세로 돌아왔다.


후에 본인이 나에게 맞았다는 거짓말을 인정하고 사과를 받았어도 그 사과는 문제해결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나의 머릿속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다 생각했다. 발달장애인 사업 경험이 풍부한 팀장님께 조언을 구했다. 전화를 자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외로움’과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다시 생각했다. 가정에서도 사정상 대화가 원활하지 않을 것이다. 주기적으로 나가는 기관에서는 정해진 규칙에 익숙해져 있기에 복지관의 새로 만난 사회복지사들과의 대화가 요 근래 가장 큰 관심이 발생된 활동이었을 것이다.

본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게 반복적인 전화통화를 하게 된 것은 그녀에게 당연한 일이 되었을 것이라는게 결론이다.

멘붕에서 제정신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정리를 했다. 동시에 죄책감도 번졌다. 내가 과연 그녀를 인간적으로 잘 대했는지, 너무 대상자로서만 기계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는지에 대한 생각이었다.


이후 그녀와의 관계에서 세워두었던 규칙을 없애기로 했다. 규칙보다 더 중요한 건 그녀를 향한 나의 닫혀있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직감이 있고, 눈치가 있다. 더군다나 눈치가 100단으로 소문난 그녀이기에 나의 행동은 훈련을 위한 방편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일단 전화통화 횟수를 강요하지 읺기로 했다. 하지 말라고 하기보다 장기간의 여유를 두고 전화사용을 줄여나갈 수 있도록 꾸준하게 응원과 격려, 칭찬을 아끼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나 스스로 더 특별히 상냥한 어조와 친절한 행동, 쉽고 직관적인 긍정 표현들을 사용하여 거리감을 없애기 위해 한발 다가서기로 했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200705235251_5_crop.jpeg 영회 -원더 중에서


나 역시 그녀와의 통화를 즐기기로 한 것이다.


오늘은 이달빛님의 프로그램이 있는 날이다. 출근하자마자 시작된 통화에서 목욕과 세수를 하고 복지관에 오겠다는 일상 보고가 시작된다.


그녀의 마음을 읽어주기 위한 노력조차 하지 않고 일희일비 하던 내 모습이 우습기까지 하다. 나는 아직도 갈길이 너무 멀다. 이게 무슨 사회복지사인가...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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