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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된 '젊은 느티나무'

by 토리가 토닥토닥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냄새가 난다.”


초등학교 때 방영시간을 지켜가며 보던 TV 프로그램이 2개가 있다. 첫째는 생활과학 끝판왕 맥가이버였다. 맥가이버는 아무리 어려운 사건이 생겨도 주변에 널린 생활물품을 활용하여 적들을 시원하게 물리쳐주는 정말 다재다능 끝판왕 이었다. 그리고 곱디고운(나중에 배한성 성우님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목소리로 나긋나긋하게 말해주는 금발 남자가 세상 그 누구보다 강하다 느꼈다.


다른 한 개는 KBS에서 주말마다 해주던 TV문학관이다. 당시 쌍벽을 이루던 MBC의 베스트셀러 극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단막극 드라마였는데 특히 백치 아다다, 무진기행, 벙어리 삼룡이, 감자 등 한국 단편소설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어린 나에게는 경험해보지 못한 인생의 다양함 들을 보여주는 일명 ‘인생극장’ 이었다.

다시 한번 해주세요. TV문학관

그중 가장 좋아했던 에피소드는 강신재 작가님의 ‘젊은 느티나무’였다. 인터넷으로 다시 찾아보니 1986년 11월 29일에 방영되었다.

당시 여주인공인 숙희 역으로는 김혜수 배우님, 남주인공 현규 역으로는 이효정 배우님, 남자 주인공의 친구 역할에는 정보석 배우님이 출연했다. 뽀얗고 하얀 피부의 김혜수 배우님이 너무나 예뻐 어린 나이지만 ‘곱다’는 표현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진짜. 정말. 예쁘시네요... 김혜수 배우님.. 따흑....

엄마의 재혼으로 만나게 된 숙희와 이복오빠 현규는 서로 애정을 느끼고 감정을 나누지만 현실이 두려워 잠시 헤어짐을 선택하고 언젠가 다시 사랑을 이어가자고 결심하는 줄거리다.

(내가 생각할 때는 '확인'이 아니라 '결심'이었다.)

풋풋함의 결정판 - 저 시절 내가 현규라도 숙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듯.

저 짧고 강력한 줄거리가 ‘젊은 느티나무’의 전부다. 초등학생 때 드라마가 강력했는지 머리가 크고 나서 혼자 서점에 가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사게 된 책이 ‘젊은 느티나무’였다. 아마 어린 나이에도 ‘비누냄새’의 산뜻함이 그대로 남았을 터였다.

나중을 기약하는 숙희와 현규

이후 좀 더 나이를 먹고 나서는 ‘젊은 느티나무’를 넘어 강신재 작가님에 대해 알아보게 되고 그분의 다른 작품들까지 읽어보게 된다.


작가님은 1924년에 태어나 2001년 숙환으로 영면 하시기까지 ‘젊은 느티나무’의 로맨스뿐 아니라 1950년 6월 25일 전쟁을 온몸으로 겪은 공포의 상황들과 명성황후 민비 등의 역사소설까지 다양한 글짓기를 하셨다.

우연히 발견한 독서노트

특히 ‘임진강의 민들레’는 젊은 여성이 전쟁 속에서 겪는 생생한 현장감과 눈앞에도 그려지는 상황이 글을 읽는 동안 가슴이 먹먹했던 작품이었다.

지금도 ‘젊은 느티나무’를 생각하면 현실에서의 ‘숙희’와 ‘현규’는 둘의 사랑을 어떤 식으로 완결했을지 궁금하다. 소설 속에서 두 사람은 너무나 맑고 청순하여 감히 해피엔딩이라고 하고 싶지만 과연 사회규범상 이루어질 없는 사랑이 순수성만으로 가능할 것인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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