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맞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언제 올지 모르기에 겸허한 마음으로 준비하려 합니다.’로 시작하는 나의 유서는 작년 10월 1일에 작성되어 휴대폰 메모장에 보관되어 있다.
유서는 몸이 가장 건강하다 느꼈을 때, 마음의 무게추가 중심을 잘 잡고 있다 생각했을 때 작성되었다.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기에 준비는 늘 해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족이나 남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탓도 크다.
유서의 1/3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평상시 하지 못했던 말이 어찌 그리 많았는지 한 줄 한 줄 꾹꾹 눌러가며 써내려 갔다.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나에게 엄마이며, 아빠였고 친구들이었던 자매들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함까지.
그리고 얼마 안 되는 보잘것없는 재산목록을 작성했다. 가진 것 별로 없지만 적어놓고 보니 그래도 폐는 끼치지 않겠다 안심이었다.
재산으로 불리기에도 변변찮은 약간의 돈을 마지막 신변을 정리해 줄 자매 1명을 지정하여 위탁했다. 막상 해놓고 보니 미안하기는 했지만 마음이 든든했다.
다음으로 작성한 것은 간소하고 단출한 장례식에 대한 당부와 장례식장에서 꼭 해주었으면 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어느 장례식장에서나 늘 나를 우울하게 했던 것은 적막과 눈물이었다. 떠들썩한 웃음소리로 채울 수는 없다 하더라도 내가 죽은 이후에 그녀는 '잘 살았었다'라고 유쾌하게 이야기해주었으면 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죽음이든.
유쾌함의 극대화는 이래야 한다.하여 늘 상상하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로 채워진 장례식이었다. 사람보다 음악으로 채워진 그저 무겁지 않은 장례식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그 음악들을 들으면서 잘 살고자 노력했던 나를 상상하고 애도해주었으면 했다. 그러나 음악을 틀던 말던 죽음 이후는 남겨진 자들의 몫이라 그저 나는 나의 생각을 전달할 뿐이다.
음악은 휴대폰에 보관되어 수시로 변경된다나의 삶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고 보니 고작 A4 한 장으로 채워지는 단출한 삶이었다. 뜻밖의 발견도 있었다. 낯부끄러워 평상시 할 줄 몰랐던 가족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각자의 삶 속에서 나와 좋은 관계를 맺어주기 위해 노력했고 늘 내 편이 되어주었다. 이래서 죽음 앞에서 부와 명예보다는 감사함과 고마움만 남게 되는 것인가 생각했다.
2019년의 유서는 이렇게 끝이 난다.
그동안 좋은 인연이 되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중에 만나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살아계시는 동안 건승하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세요.
다음 유서는 2020년 10월 1일에 작성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