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에 다시없을 TV출연

by 토리가 토닥토닥

비가 오면 고등학교 때 도덕 선생님이 생각난다.

도덕 선생님은 당시 40대 여자분이셨는데 비가 오면 술을 꼭 먹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비가 오면 대기 기압이 낮아짐에 따라 몸의 기압도 낮아져 어지럼을 느끼신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술을 마시면 몸의 기압이 정상의 컨디션이 되기 때문에 비 오는 날 술을 꼭 마신다 하셨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었는데 비가 오면 다리가 그렇게 쑤신다고 했다.

지금은 술을 1년에 한 번, 많아봐야 두 번 정도 마시는 정도지만 고등학교 때에는 그 말씀만 듣고 비가 와서 다리가 쑤시면 꼭 술을 마셔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대학생 때는 수시로 몸이 쑤셔 날씨가 맑아서, 날씨가 흐려서 열심히 마셨다.


다리가 쑤시는 장마철이 왔다. 다리 하면 생각나는 분이 있는데 생에 다시없을 TV 출연을 하게 해 준 분이다.


아마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였던 것 같다. 당시 일하던 곳은 가리봉동으로 중국교포가 많이 거주하던 지역이었다. 어떤 일로 그 댁을 방문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다음 장면은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 댁은 다세대 주택 2층의 방 1개 였다. 주택 규모상 화장실은 1층에 있었던 것 같다. 계단이 가파른 2층 이었고 집 안은 온통 깜깜했다. 그리고 깜깜한 가운데 쑥향을 비롯한 온갖 향냄새가 진동을 했다.


“안녕하세요. 복지관에서 왔어요.”

인사를 했으나 반응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복지관에서 방문했는데요.”

안에서 인기척이 나고 유달리 다리가 긴 할아버지가 온몸을 바닥에 붙인 채 두 손에 몸의 무게를 받치고 기어서 나오고 계셨다.

그런데 그 온갖 향냄새는 할아버지의 하체에서 나는 냄새였다. 변과 섞인 뭔가 기묘한 냄새였다.


다시 할아버지를 이불에 눕혀놓고 한국에 어떻게 입국하셨는지, 어떻게 생활하고 계시는지 묻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중국교포로서 한국에 먼저 입국하신 아들 2명과 할머니와 함께 1개의 방에서 거주하고 계셨다. 아들 2명은 지방에서 일하시느라 계시지 않은 상태였다.


몸은 왜 편찮으신지를 물어보자 할아버지는 자꾸 할머니에게 물어보라며 자신의 몸상태에서 대한 정확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좀 더 기다리자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정말 솔직하게 이야기하셨다.


할아버지가 2~3주 전 밤에 1층에 있는 공동화장실을 다녀오시다 방문에 다리가 걸려 넘어지셨는데 그 뒤부터 너무 아파했다.

그러나 저 큰 사람을 끌고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밤낮없이 너무 아파하니 본인이 중국에 있을 때 민간요법으로 다리를 치료한 경험이 있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할아버지 엉덩에 쪽에 뜸을 떴다. 단지 그거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뜸이었다. 뜸을 통증만큼 너무 자주 너무 많이 올리셨다. 살이 물러지고 물집이 생긴 곳에 또 뜸을 뜨시고 또 살이 물러지고, 또 물집이 생겼다. 너무 궁금했다. 도대체 어느 정도길래 저 정도의 뜸을 올릴 수밖에 없었는지.. 할아버지께 양해를 구하고 할머니와 바지를 내린 상태에서 확인을 했다.


살은 정말 구멍이 뚫리기 직전이었다. 즉시 할머니께 뜸을 멈추셨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할아버지의 국적 상태로 국가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는 상태셨지만..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생각 들었다.


할아버지의 선한 모습과 저대로 두면 괴사로 인해 사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복지관으로 돌아와 보고를 하고 근처 정형외과를 방문하여 의사 선생님의 방문검진을 요청했다. 의사 말로는 대퇴골이 부러진 것 같으니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뼈가 살을 찌르고 있는 상태라고 하셨다. 이후 복지관에서 사용할 수 있는 후원금의 정도를 파악하고 의사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의사가 의료복지 차원에서 최소의 수술비만 받겠다 했어도 그 수술비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관장님께 제안했다. 후원금을 방송(EBS 0700 효도우미, 지금은 나눔 0700)이나 혹은 기업 후원을 통해서라도 끌어오겠다. 복지관에 있는 돈을 미리 지출해도 되겠냐고. 그런데 당시 관장님께서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복지사의 이야기에 선뜻 그러라고 하셨다.

(관장님 고맙습니다. 관장님의 의지 없이는 힘든 일이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이끌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키 큰 할아버지를 살리고 싶었다.


그리고 EBS 0700 효도우미 방송작가에게 전화를 했고, 다행히도 방송 출연이 확정되고 나도 출연했다. 그 사이 할아버지는 119의 도움으로 2층 가파른 계단을 벗어나 병원에서 무사히 수술을 받으셨고, 후원금도 잘 모아져 병원에도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엄마는 내가 복지사로서 TV 출연하신 것이 너무 신기하시다며 비디오 녹화까지 하셨다.)


가끔 나도 다리가 쑤신다. 다리가 쑤시면 가끔 그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건강은 어떠신지. 아니면 하늘나라에 계신지.


할아버지께서 고통스러워하시던 다리가 다 나았다며 병실에서 할머니와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기억의 마지막이다.

할아버지, 제가 할아버지 도와드릴 수 있어서 저도 참 좋았어요. 저는 그거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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