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1학년 때 지하철 입구 대리석 바닥에 초라한 채소 바구니를 놓고 따뜻한 시선 한번 받지 못하는 할머니를 보며 시작된 저차원 질문이 있었다.
“저 할머니는 이 추운 겨울에 어떻게든 살려고 노력하는데 나라에서는 도와주고 있을까? 였다.
이 질문은 업무를 통해 사회복지 정책들에 관심이 쌓이게 되면서 조금 더 정리될 수 있었다. 설령 가난은 나라도 구제할 수 있겠지만 그 구제에는 할머니와 같이 스스로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위한 부분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에 비해 사회복지 지원들이 다양한 대상들에게 폭넓게 지원되고 있다 하더라도 정말 필요한 핵심 지원 거의 대부분은 정말 가진 것이 하나도 없어야지만 시작될 수 있다. 말 그대로 소득과 기본 재산 등 가진 것이 하나도 없어야지만 절차와 검증을 걸쳐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절대 아니겠지만 경험으로 체감했던 것 중 하나는 통장으로 들어오는 정기적인 생활비를 받는 사람들 중에는 다시 재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수가 적었다는 점이다. 수십 년을 수급비나 장애수당이 들어오는 날에는 술을 사 마시거나 고스톱 등의 도박을 통해 일주일 사이에 통장에서 없어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만큼 한번 시작된 지원은 끊어내기 힘들며 습관처럼 익숙해지는 시간은 길어진다.
그렇기에 공적부조의 시작은 더 신중해야 하며 재기를 위한 지속적인 관심 및 지원과 다양한 혜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사회는 게으름이나 도박빚 같은 개인적인 소비나 패턴으로 인한 부분보다는 오히려 이혼, 질병 등과 같이 연쇄적 효과를 가진 한가진 사건으로 인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고 빚을 지며 버티고 버티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기에 삶이 피폐해지고 무너지는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대다수 사회복지 지원이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게 집중되어 있어 차상위계층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너무 작고 소외되는 것은 아닐까.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기보다는 이겨내 보려 노력하는 자생적인 힘을 가진 이들에 대한 지원이 더 다양하고 폭이 넓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빈곤의 대물림이 줄어들고 건강한 가족들을 더 많이 살릴 수 있다. 나는 가족이 모든 것의 기본이라 생각한다. 건강한 가족들을 통해 건강한 지역사회도 존재할 수 있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청년은 사회복지 대상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대상이 되었다. 이 부분은 앞서 이야기했던 자생적인 힘을 가진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대상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또한 평생 지원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지원해줘야 한다.
그러나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연쇄적인 사건에 도미노처럼 무너지지 않도록 정책적인 완충 장치들이 더 폭넓고 다양하게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