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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아 Dec 18. 2020

공간도 친구가 된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8년 차 친구다. 이사 올 때 짐은 오로지 옷 몇 개와 책 5박스였다. 미니멀리즘이 뭔지도 몰랐지만 그저 최소의 짐으로만 살고 싶었다. 이후에도 침대 매트리스조차 사지 않고 6년을 지냈다.

언젠가 동생이 말했다. 내가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생활 조건들이 있다고. 1. 외로움 없음, 2. 정보력 갑, 3. 요리 척척, 4. 살림꾼. 아마도 평상시 행동이 반영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저 조건 모두가 '땡~!'이다.


외로움이 많지만 티를 내면 뚝이 무너지듯 여기저기 애정을 갈구할 것 같아 스스로 댐 수위 조절하듯 조절하는 것일 뿐이고, 요리 척척은... '척척'만 흉내내기 때문이다. 정보력이야 누구나 그러하듯 인터넷을 열심히 뒤지는 것뿐이고, 살림꾼은 그저 청소 설거지를 잘하려 노력하는 것에 한정되어 있다.


그렇게 어설픈 나에게 쉼을 주는 이 '공간'은 수시로 능력치 이상의 '관리'요구한다.

막 이사하고 몇 달이 지났을 때였다.


식사 후 설거지를 하고 나면 물이 싱크대 밑에서 샜다. 전에 살던 사람이 싱크대 배수관에 별도의 관을 빼 보조 정수기를 사용하다 이사를 하면서 제대로 처리를 하고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번이나 반복이 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아는 수리업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물어볼만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급기야 물은 역류했다. '콸콸콸' 온갖 음식쓰레기가 바닥으로 흥건해졌다. 멘붕이 왔다. 일단 근처 집수리 상점으로 가니 싱크대의 개수대 통 전체를 갈아야 한다고 말했다. 30만 원을 불렀다. 한숨이 먼저 나왔다. 인터넷으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하나하나 비교해가며 인터넷으로 3만 원 정도의 배수통을 주문하여 셀프 교체를 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전등 갈기를 시작으로 화장실 양변기 부속 셀프 교체, 세대면 배수관 셀프 교체 이어졌다. 재작년 겨울에는 출근을 하려 준비하는데 물이 안 나왔다. '아읔.'


연락처에도 없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1층이라 했다. 4층에서부터 내려오는 하수관이 겨울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터져 홍수가 났다고 수리할 때까지 물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이틀간 물을 사용하지 못했다. 급하게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 와 머리감기와 세수를 하고 출근을 했다.     

뜬금없지만 집도 내력과 외력이 있는 건물이니까요.

조용한 공간에 혼자 아늑하게 있다는 것이 독립이 주는 최고의 혜택이었지만 반면에 집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끊임없이 돌봐주어야 한다며 이야기를 하는 듯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은 공간이 너무 좋다. 감정이 이입된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 작은 공간은 나를 차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다음날 회복할 수 있는 쉼을 준다. 아늑하다. 오늘 하루 잘 지냈다고, 수고했다고 토닥여준다.

내가 이 공간에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는 방법은 청결을 유지하고 조금이라도 무거움을 주지 않기 위해 짐을 줄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제대로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부속들을 튼튼한 제품으로 교체해주는 것이다.

렇게 집과 나도 서로 좋은 관계로 더 친해진다면 더 좋은 일이 생기게 해주는 오로라가 뿜 뿜 뿜어져 나오는 영험함도 발휘해주지 않을까 기대된다. 올해도 무탈하게 보내게 도와준 나의 작은집에 감사와 고마움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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