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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아 Dec 16. 2020

또 하나의 관계가 끊겼다

몇 해 전 핸드폰을 바꾸었다. 꽤나 오래 쓰던 폰 이다. 자연스럽게 전화번호 바꾸면서 그 많은 저장된 번호들을 굳이 옮기지 않았고, 고맙게 끊어주기도 했다. 사람들과의 '좋던 나쁘던' 그 관계 놓기 힘들어 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좋아하려 노력하는 그 자체를 즐기기 시작하던 때였다.      


더 이상 뒷목에 곰 두세 마리를 얹은 것과 같은 관계들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연락을 하지 않으면 단 한 번이라도 반응을 보이지 않 그 관계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들에게는 내가 사라진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마음이 가벼워졌음은 말할 나위 없다.    

올해 봄에 그들 중 한 명에게 계정이 바뀐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가 맞나요?”

연락을 준 지인은 늘 둘만이 아는 관계를 장황한 혹은 너무 세밀한 상황 묘사로 나의 잘못을 낱낱이 꼬집고 헤집어 위축되게 만들었다. 또한 친근함의 표시로 가벼운 욕이라도 서슴없이 던지고는 했다. 그러나 덧입혀지고 있는 상처를 표현하기에는 내가 너무 미숙했고, 움츠러들고 자책하기 바빴다.      


6년 만에 안부를 주고받았다. 회사생활에서 주는 고단함을 짧게 나누는 과정에서 지인은 말했다. “너 많이 변했네. 뭐야, 왜 이렇게 달라졌어?” 아마도 예전과는 달리 덤덤하게 한발 혹은 두발 앞서서 문제 해결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해줬던 조언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그녀가 아닌 ‘내가’ 불편한 상황이 또 다시 발생되었다. 그리고 지인은 숨기지 않고 일부러 나의 자존심과 자존감을 밟았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왜 밟아야 했는지는 이유는 말하지 않았고 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번에는 숨지 않았다. 그리고 정직하게 연락을 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15분의 대화가 끝나고 지인이 말했다.

“10년을 안 만났다 하더라도 친구관계는 이러면 안되는 거야.”

“그래, 무슨 말인지 알았고, 두 번은 너에게 연락할 일이 없으니 잘 지내.”


그녀와의 통화가 끝이 나고 서운함보다는 시원함이 앞섰다. 내가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단 10초도 지체하지 않고 전화번호카톡을 지웠다.      

괴롭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이 결과는 당연하다 생각된다. 나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는 건강한 대화를 나누는 조건들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모든 관계들에 욕심 내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긍정적이며 건강한 관계로 좋은 인연이 되어 주고 싶음과 표현 나의 몫이고 이후 그렇게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건 상대방의 마음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강한 관계가 힘들 조건들 상대방이 계속해서 신호를 보낸다면 이후 관계 지속여부는 나의 몫이라 생각한다.

그게 순리같다. 억지스럽지 않은.


그래서일까 좋은 사람을 만나면 아깝고 고맙다. 고마움에 내가 아닌 상대방을 빛나게 해주고 싶다.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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