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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아 Dec 19. 2020

하루하루 작은 선택으로 바뀌는 삶

결혼은 26살 안에 할 줄 알았다. 나의 꿈은 중국집 주방장 부인으로 자식 3명 낳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평범한 엄마이자 부인, 그리고 며느리가 될 줄 알았다. 이 생각은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머리에 박혀있던 생각이었다. 대학도 갈 생각이 없었다.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직장생활을 빨리 시작해 돈을 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40대 중반이 되고 나니 하루하루 작은 선택이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든다.      

언니들이 대학을 가니 자연스럽게 대학을 가야겠다 생각했고, 대학을 가니 더 악착같이 취업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취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남자를 만나야겠다 생각했지만 밀당(좋으면 좋은 거지 밀당이 웬 말인가!)과 눈치게임을 하지 못했고, 직장생활에서 만나는 남자들은 그저 ‘직장동료’ 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도 없고, 남편도 없고, 며느리도 되지 않았다. 중학생 때 생각하던 삶의 정반대의 삶으로 살고 있다.     

2주 후면 새로운 달력을 넘겨야 하는 새해가 시작된다. 생각해보지 않았던 60~70대의 나를 생각해본다. 지금의 선택이 그때가 되면 어떤 삶을 살게 하고 있을까. 占을 보면 알 수 있을까? 뜬금없지만 占을 처음 본 것은 대학 졸업을 앞둔 시기였다. 졸업을 앞둔 시기는 경기불황으로 뉴스에서는 가정 붕괴와 늘어나는 노숙인의 이야기로 뒤범벅이었다. 최악의 시기였다. 아르바이트 자리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졸업은 다가오는데 어떤 곳이든지 취업만 되면 좋겠다는 밑도 끝도 없는 불안감이 가득 찬 시기였다.      


내가 사회복지사로 일할 수 있을지 占을 보았으나 사실될 거라고 말하는 사람없었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든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싶었 아무리 도전해도 취업이 되지 않아 꽤 오랜 시간을 종로 5가에 있는 전선과 전기용품들을 파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도전하고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   


만약 그 도전을 지속하지 않고 전선 판매 회사에서의 삶을 만족했다면 나는 아마도 사회복지사로서의 꿈을 펼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반면 잘못된 선택도 많았다. 살을 빼고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운동과 같은 노력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주는 통증 수시로 무시했다. 강도가 쎈 업무를 핑계로 과식과 야식을 즐기며 살다가 결국 수술을 받기도 했다.      

작은 선택이 모여 삶을 이루는 것이라 한다면 어떤 선택이 더 착하고 건강한 선택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핵심은 선택은 신중하게 결정하되 후회하지 않는 것이다.


문득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에서의 대사가 생각난다.      


너부터 행복해라. 제말.

희생이란 단어는 집어치우고

누가 희생을 원해?

어떤 자식이, 어떤 부모가? 누가 누구한테...

거지 같은 인생들의 자기 합리화지.

뻔뻔하게 너만 생각해. 그래도 돼.     

후회는 자기 학대의 다른 의미라고 했다. “그때 그랬다면 좋았을걸, 저때 저랬으면 달라졌을 것을...”이라는 말은 지나고 나면 큰 의미가 없다.


그렇게 모여진 순간순간, 지금, 오늘 그리고 매일매일 선하고 건강한 선택들이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데 더 나은 방향이 되었으면 한다. 그라고 눈을 감을 때 잘 살았다고 말한 뒤 큰 한숨으로 마무리하는 좋은 마침표가 되어주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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