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하는 천년고찰 108배 프로젝트| 열네 번째 108배]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 어디 있는 줄 알아?"
안동 여행을 하는 김에 안동에 있는 천년고찰에 들르기로 했다. 아니 안동에 있는 천년고찰에 간 김에 안동 여행을 하기로 했다. 안동에는 오래전 엘리자베스 2세가 방문해서 유명해진 봉정사가 있고, 봉정사 인근에는 광흥사와 개목사라는 천년고찰이 있어 날 잡고 돌면 좋겠다 싶었다.
오전 일정이 있어 점심을 먹고서야 안동으로 출발한다. 안동은 천년고찰 외에도 하회마을이며 병산서원, 소수서원 등 볼 게 많은데 늦은 출발이라 안동에 도착하면 한두 곳 정도 빠듯하게 볼 수 있을 정도의 시간밖에 남지 않는다. 일단 예약한 호텔과 가까운 하회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가다 보니 아무래도 판단 미스인 것 같다. 하회마을 도착 예상 시간이 5시인데 입장 마감시간에 걸려 자칫 들어갈 수 없을지도 모를 상황이라 하루를 공치게 될 위기다. 냉큼 입장에 시간제한이 없는 봉정사로 행선지를 바꾼다.
2시간 넘게 차를 달려 안동에 들어섰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을 지나 봉정사에 도착했다. 봉정사 어귀에 어디서 본 듯한 형태의 바위가 보인다. 마곡사에서 봤던 그 바위. 봉정사도 마곡사와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부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 대흥사와 함께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으로 등록된 7개 사찰 중 하나란다.
봉정사는 672년 신라 문무왕 때 창건되었다고 한다. 봉정사의 창건자인 능인스님은 의상대사의 제자였는데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 날렸더니 봉정사 자리로 왔다 한다. 그래서 절 이름을 봉황이 머물렀다 하여 봉황새 '봉(鳳)' 자에 머무를 '정(停)' 자를 따서 봉정사가 되었단다. 정말 그런가 싶지만 이런 전설이 있어야 왠지 정말 오래되고 영험한 절 같다.
주차장에서 절 입구까지 이어진 계단을 올라 경내로 들어간다. '천등산봉정사'라고 쓰인 현판이 걸린 만세루가 보인다. 이 만세루는 과거에는 거룩한 덕의 광채라는 뜻의 '덕휘루(德輝樓)’라 불렸다고 한다.
만세루를 지나는데 턱이 높고 발 딛는 부분이 둥글게 깎여 있는 처음 보는 문지방이 보인다. 찾아보니 이러한 형태의 문을 누하문(누문)이라고 부른단다. 다른 사찰에서는 못 보던 형태라 왜 이런 형태의 문지방을 놓았을까 호기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든다. 건너기 다소 부담스러운 높이의 문지방이고 천장마저 낮은 걸 보니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건가. 뭔가 깊은 뜻이 있겠지.
만세루 문지방이 높아 문지방을 떠받드는 양 옆 기둥과 함께 만세루 아래로 보이는 풍경이 마치 액자에 든 그림처럼 보였다. 발아래 높고 둥그스름하게 아래가 패인 나무가 걸쳐져 있어 넘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문지방을 넘는다.
전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건데 108배를 하러 여러 절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관찰력이 조금은 깊어진 것 같다. 전보다 더 주변을 주의 깊게 보면서 어느새 절마다 다른 형태의 건축물을 조금씩 구분할 줄 알게 되었다. 궁금한 내용들을 서로 물어가며 함께 답을 찾고 이야기하면서 새로 알게 된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민세루를 지나니 바로 대웅전이 보인다. 화려한 단청 없이 오래된 나무의 결이 그대로 드러난 모습이다. 오후 시간이라 그런지 경내에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조용하고 부산스럽지 않아 좋았다. 그 때문일까. 봉정사는 명성에 비해 소박하고 차분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대웅전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108배를 한다. 아이가 사진 찍느라 여기저기 다니길래 먼저 들어가 좌복을 깔고 108배를 할 준비를 했는데, 나중에 들어온 아이가 먼저 가면 어떡하냐고 소곤거리며 볼멘소리를 한다.
툴툴대는 아이에게 이제는 좀 각자 다니자고 했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절을 둘러보고 순간을 만끽하고 조용히 108배에 집중하자고.
108배를 마치고 대웅전에서 나와 신발을 고쳐 신는데 눈앞에 사진으로 가득한 벽면이 보인다. 오래되어 빛바랜 사진 속에는 봉정사를 배경으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아 맞다. 그랬었지. 문득 어릴 적 TV로 봤던 뉴스가 떠올랐다.
봉정사는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 가장 한국적인 건축물을 보고 싶다 해서 선정된 사찰이라고 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들이 있는 천년고찰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여왕이 이곳에 들렀을 때 한국에서 방문한 곳 중 가장 한국적인 곳이라며 아름답다 했다 한다.
땀을 식힐 겸 경내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대웅전 옆쪽으로 황톳빛 작은 건물들이 작은 마당을 두고 '디귿자'로 모여 있었다. 말로만 듣던 봉정사 극락전이었다. 이게 그 유명한 봉정사 극락전이냐며 아이는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봉정사로 오기 전 공부한 유명한 국보의 모습을 직접 보니 신기한가 보다.
봉정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라고 한다. 언제 만들어졌다는 기록은 없지만 1970년대 극락전을 보수하면서 1363년 고려 공민왕 때 지붕을 크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담긴 상량문을 발견하면서 대략의 창건 연대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단다. 우리나라의 전통 방식 목조건물은 지어진 후 대략 100년에서 150년이 지난 후 지붕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기 때문에 이를 역산해서 건립연대를 1200년대 초로 추정해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 여겨지고 있단다.
실제로 본 봉정사 극락전은 단아하고 조용한, 오래된 나무의 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마치 엄청 나이가 많은 산신령 같은 느낌이었다.
문 하나에 창문 두 개, 사다리꼴 지붕을 한 작은 집. 어릴 적 많이 그렸던 전형적인 집의 모습이다. 전혀 화려하지 않고, 크기도 작고 소박해서, 또 그 앞에 극락전만큼이나 오래되어 보이는 석탑이 있어 더 오래된 것처럼 느껴졌다.
극락전 앞에서 합장을 하고 오래된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꾸준하고 우직하게 버텨온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세월의 더께를 쌓아가는 일들에 대해, 범접할 수 없는 그 깊이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