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통날
# 가능성
가지고 있는 것을 잃기는 쉬우나, 잃은 것을 되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였다. 한번 잃은 건강을 되찾기까지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본격적으로 재활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이전에는 당연했던 많은 것들이 더 대단하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것들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몇 가지만 적어보자면 일어나 앉기, 서기, 걷기, 뛰기, 계단 오르내리기 같은 것들이다. 여전히 불가능한 수많은 동작들은 일일이 다 말할 수도 없다.
내가 사고로 잃은 것들을 나열해보자면 건강, 시간, 꿈, 자존감 같은 것들이지만, 이 모든 것들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말은 ‘모든 것에 대한 가능성’이다. 다치지만 않았다면 등반가, 다큐멘터리 감독, 다른 무엇도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졸지에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사람으로 전락해버렸다. 잃은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집중하면 할수록 잃은 것, 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이 떠올랐다.
이런 생각에 한 번 잠기면, 머리 끝까지 깊숙이 잠겨 다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생각을 멈추고 긍정적인 생각들에 집중해야만 했다. 잃은 것을 세지 않고, 아직 내게 남은 것들을 하나씩 떠올리기 시작하면 어쩐지 마음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두 손이 멀쩡하니 혼자 세수도 할 수 있고, 이도 닦을 수 있고, 머리도 감을 수 있고, 밥도 먹을 수 있다. 휠체어 바퀴도 굴릴 수 있고, 혼자서는 조금 버겁긴 하지만 휠체어에서 침대로 옮겨 앉을 수도 있고, 열심히 운동하면 몇 달 뒤엔 걸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잘난 얼굴은 아니지만 그래도 크게 상하지 않아서 연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고, 좋은 머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다치지 않아서 사무실에 앉아서 하는 일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여전히 내게는 많은 가능성이 남아 있다.
# 행복의 상대성
재활 치료는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처음에는 더디게 나아지는가 싶더니, 한 번 속도가 붙으니 걷게 되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쯤 되자 나는 병실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 맞은 편에 입원해 있던 아저씨는 나를 보며 부럽다는 말을 연신 쏟아냈다. 그 표정에 어찌나 진심이 묻어나 있던지, 뭐라고 대꾸할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하고 대충 얼버무리며 침대로 올라가 누워버리곤 했다.
사람은 아플수록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 같다.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저씨의 표정은 꾸며낸다고 해서 꾸며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걷는다는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그토록 간절한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행복은 상대적이다. 날이 갈수록 상황은 좋아졌지만 나는 그에 비례해서 행복해지지는 않았다. 평범했던 이전의 생활을 하나 둘씩 찾아가는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금세 조바심이 났기 때문이다. 사람 일이란 게 참 얄궂다. 하나의 목표이자 지향점이었던 지점에 다다르면, 더 멀리 있는 목표를 향해 달리느라 마음 놓고 기쁨을 누릴 여유가 없다. 욕심에는 끝이 없다.
몸이 거의 온전해진 지금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걷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절뚝거리지 않으면서 걷고 싶고, 더 나아가 숨 가쁘게 한 번 달려보고 싶다. 물론 알고 있다.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들에 더 집
중하면 아쉬움은 점점 커지고, 인생은 그에 비례해서 불행해진다는 것을. 그걸 알면서도 참 쉽지가 않다.
<다시, 보통날>이 출간되었습니다.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보세요.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6517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