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칼한 하루
관원모집 OO검도관
시작은 전단지 한 장이었다. ‘검도는 신체와 정신의 고른 발달에 도움이 된다’, ‘체대 입시반 운영 중’ 따위의 문구가 적힌 전단지 한 장. 검도 호구를 착용한 두 사람이 죽도를 맞대고 있는 사진이 배경으로 깔려있고, 그 위에 검도의 좋은 점과 3개월 등록 시 죽도와 도복을 증정하는 이벤트가 진행 중이라는 문구가 나열돼 있었다.
전단지 아랫부분에는 전화번호가 세로 쓰기로 여러 개 적혀 있었는데, 뜯어가기 쉽도록 잘게 잘려 있었다. 그중 몇 개는 벌써 뜯긴 상태였다. 나 말고도 검도에 관심 있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가 보다 생각하면서 나도 전화번호 한 개를 뜯어 주머니에 넣었다. 사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전단지를 붙이는 사람이 전화번호 몇 개를 뜯어가는 걸 여자친구가 목격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뒤로도 종종 전봇대에 붙어 있는 전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서둘러봐야 이미 지각이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느긋하게 출근하던 출근길에, 어쩐지 헛헛한 마음 달래려 네 캔 만 원짜리 맥주를 사들고 퇴근하던 퇴근길에. 전에 봤을 때와 별로 달라진 것도 없을 텐데 괜히 멈춰 서서 바라보며, 운동 시작 시간에 맞춰 퇴근할 수 있을지, 일주일에 몇 번이나 출석할 수 있을지, 하다가 얼마 안 돼 그만두는 건 아닐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전봇대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 후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회사, 집, 헬스장을 반복하고 있었지만 그 사이 회사가 한번 바뀌었고, 나는 사원에서 대리가 됐다.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던 대리님은 차장님이 되었고 나와 다른 회사로 이직했지만 여전히 걸어서 만날 수 있는 거리였다. 우리는 가끔 점심시간을 함께했다. 그래봐야 같이 밥을 먹고 카페에 가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말이다. 우리의 대화는 근황 토크에서 시작돼 현실 비판(혹은 비난)으로 이어졌다가 결국에는 ‘기술 하나 배워 놓을걸’이라는 푸념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차장님은 기껏 복싱 실력을 키워놨더니 이직한 회사 근처에는 복싱장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그리고는 내게 아직 헬스장을 다니냐고 물어왔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사실 언젠가부터 검도를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몇 년째 생각뿐이라고 덧붙이면서 왠지 좀 머쓱했던 것 같다.
그날의 만남이 있은 후 얼마나 지났을까. 몇 년째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문제라면 한번 상담이라도 받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 시작 시간에 맞춰 퇴근할 수 있을지, 일주일에 몇 번이나 출석할 수 있을지, 하다가 얼마 안 돼 그만두는 건 아닐지 하는 문제들은 일단 시작하고 나서야 발생할 일들이니까. 아직 시작도 안 했으면서 저울질만 하는 것보다 한심한 일도 없겠다 싶었다. 그렇게 오래전 위치를 파악해뒀던 전단지 속 검도장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집에서 10분 거리를 3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