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

다시, 보통날

by 조성준

# 낯선 풍경


눈을 떴다.

엄마가 보인다. 아빠도 보인다. 동생도 보인다.

모두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불현듯 시선을 몸 쪽으로 떨어뜨렸다.

배가 열려 있다. 이상한 쇠꼬챙이가 여기저기 꽂혀 있다.

다리에 감각이 없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분명 나는 암벽 등반을 하고 있었다.

목표 지점까지 얼마 남지 않았고, 별 무리 없이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왜 내가 지금 여기에 이러고 있는 거지?



# 추락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직까지 미스터리다.


사고자는 나를 포함한 두 명. 나는 살았지만 다른 한 명은 그렇지 못했다. 사고 당사자이면서 현장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나는, 아쉽게도 그날의 기억이 명확하지 않다. 아주 어렴풋이, 띄엄띄엄 기억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기엔 너무도 단편적인 조각들일 뿐이다.

2011년 5월 1일, 내가 사고를 당한 날. 날이 흐렸다. 그 전날에는 비가 많이 왔다. 등반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밤새 많은 비가 내렸지만, 아침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뚝 그쳤다. 그래서 계획대로 산행을 감행했다. 사실 산행을 취소하고 싶었다. 비가 그치긴 했지만 축축이 젖은 산을 오른다는 것이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날의 산행은 많은 선배들과 함께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것이기에, 내 마음대로 취소할 수가 없었다.


나는 대학 산악부의 대장이었다. 말이 좋아 대장이지 그냥 감투였다. 말 잘 듣고 부려먹기 좋게 생긴 적당한 녀석 하나를 골라서 씌워주는 감투 같은 것 말이다. 나는 그날의 산행도 군소리 없이 참여했다. 그런 의미에서는 그야말로 대장감이었다.


나는 왜 암벽 등반을 시작했을까. 특별히 산을 좋아하거나 암벽 등반에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내가 암벽 등반을 하게 된 것은 강의실에 붙은 포스터 한 장 때문이었다. 멋진 포즈로 바위를 오르는 남자의 모습을 보고, 왠지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스스로를 증명하고 타인에게 주목 받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할수록 분명해진다.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보통의 삶이 지긋지긋했다. 평범한 인생을 살다가 생을 마감하느니, 잠깐 살다 죽더라도 특별한 인생을 살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극단적으로 표현된 것이 암벽 등반이었다. 겉으로 뚜렷이 드러나는 게 없는 희뿌연 삶 속에서, 모든 것이 확연히 드러난 산을 오르며 미온적인 삶의 풍경을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대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오르고 올랐다. 한 번 떨어지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올랐다. 열정이라기보다는 강박에 가까운 어떤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 여정에서 탈락했다. 암벽을 오르는데 바위가 무너져버렸다. 단 한 번의 추락 사고로 나는 거의 모든 것을 잃었다.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원망스러웠다. 딱히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도 모를 분노와 증오가 가득했다.


‘도대체 왜?’라는 물음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다시, 보통날>이 출간되었습니다.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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