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나리상회

울릉도 백패킹

울릉도 나리분지에는 나리상회라는 상점이 있다. 소박하고도 잘 정돈된 풍경 때문에 이곳을 지나치는 여행자라면 꼭 한 번 발길을 멈추게 되는 곳이다. 나리상회에는 없는 게 없다. 부지깽이, 명이나물 같은 울릉도 특산품부터 라면, 과자, 맥주 같은 공산품까지 다양하다. 나처럼 대책 없이 떠나온 여행자에게 나리상회는 사막속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라고 해야할까.

 

길냥이인지 집냥이인지 모를 고양이들이 늘어지게 낮잠을 청한다. 이름이 일일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칠월칠석에 발견한 녀석의 이름은 견우 라는 식이다. 나리분지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 꽤나 잘 어울리는 아메리카노 한잔을 손에 들고 풍경 속에 녹아들면 마음이 평온하다.

 

처음 나리분지를 찾았을 때는 성인봉이 유명하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나리분지까지 올라오게 된 것도 풍랑주의보가 내려 바닷가에서 야영하기는 무리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지, 무언가를 계획하고 온 것은 아니었기에 큰 기대는 없었다.

 

성인봉이나 올라야겠다. 그게 계획이라면 계획이었다. 성인봉에 오르기 전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 나리상회를 찾았다. 배낭을 내려 놓고 커피를 주문해 마시며 사장님과 이런저런 대화 도중 몇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성인봉까지는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늦은 시간에 오르기 시작하면 금세 깜깜해져 곤란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성인봉 말고 괜찮은 코스가 하나 있는데 추천한 사람마다 전부 만족했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 가면 분지가 내려다 보이는 사진 한 장 찍어 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그렇게 성인봉이 아닌 알봉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바람 한점 불지 않는 조용한 들판을 걸으며 바닷가쪽은 바람때문에 고생이었는데 분지는 잠잠하기만 한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완만한 둘레길을 따라 알봉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분지는 많은 이들이 반했을 만큼 충분히 아름다웠다. 햇빛을 받은 분지는 환히 빛나는 듯 보였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은 정겨웠다. 분지 반대편으로는 끝을 알 수 없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지는 해는 섬 전체를 붉게 물들였다.

 

스마트폰을 꺼내 나리분지 사진을 담았다. 잘 찍는 사진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각도를 달리하고 카메라의 높낮이를 달리해가며 찍었다. 하산 후 나리상회를 찾아 사진을 사장님에게 보여줬다. 그저그런 사진이었지만 진심으로 기뻐하는 사장님 반응에 왠지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연락처를 교환하고 카톡으로 사진을 전송했다. 프로필 속 사장님은 빛을 받은 나리분지처럼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쩌면 사람은 사는 곳을 닮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