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통날
# 혼잣말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내가 얼마나 다쳤는지 실감하게 됐을 때 들었던 생각이다.
처음에는 잘 몰랐다. 많이 다쳤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체감하지 못했다. 내가 추락한 높이는 30미터였다. 30미터면 아파트 12층 정도 되는 높이다. 엉덩이부터 지면에 닿았는지 골반이 완전히 바스러졌다.
몸통을 감싸고 있는 뼈도, 장기도 완전히 곤죽이 되었다. 뼈들은 각각 따로 놀았고, 그 뼈들에 둘러싸여 있던 장기는 출혈이 멎지 않았다. 때문에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손대면 ‘뻥’ 하고 터질 것 같이 팽창을 거듭했다. 피를 멈추게 하려고 명치부터 단전까지 큼직하게 배를 쭉 찢었다. 배 안에 거즈를 쑤셔넣고 피가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끝내 출혈이 잡히지 않았던 비장은 아예 떼어내버렸다.
수혈에 쓰인 혈액만 100팩에 가까웠다. 원래 내 몸속에 있던 혈액은 전부 빠져나가고, 남의 것으로 전부 갈아치워졌다. 아팠다. 진통제도, 무통 주사도 그 이름이 무색할 만큼 고통은 멈추지 않았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용케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매일 혼자서 되뇌었다.
# 갈증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할 만큼 나를 괴롭혔던 통증은 시간이 흐를수록 잦아들었다. 하지만 또 다른 고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목마름이었다. 인체의 70퍼센트가 물이라던가. 80퍼센트던가.
인간의 몸에서 꽤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물. 밥은 며칠 정도 못 먹어도 큰 문제 없지만 물은 3일만 못 먹으면 죽는다는데…. ‘이러다 정말 죽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랜 시간 물을 먹지 못했다. 링거 바늘로 수분이 공급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혈관보다는 입으로 들어가는 편이 더 나을 듯싶었다. 뱃속을 그렇게 헤집어놨으니 밥은 물론 물도 마실 수 없는 게 당연했지만, 타들어 가는 혀끝에 물 한 방울이 간절했다.
사고 후 몇 주쯤이나 지났을까, 드디어 물을 먹을 기회가 생겼다. 상태가 좋아지고 있으니 한번 시도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목을 축일 정도의 아주 약간’이라는 조건이 붙기는 했지만 말이다.
눈앞에 물이 담긴 컵이 보였고, 나는 이성을 잃었다. 물 한 컵을 그대로 쭉 들이켰다. 사고 후 처음으로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타는 듯한 목마름이 시원하게 가셨다. 부글부글 끓던 몸 속의 열이 급속도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행복은 잠깐이었다. 어느 정도 각오했던 일이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 가슴에 꽂힌 흉관으로 핏물이 줄줄 새어 나왔다. 그렇게 오랫동안 참아왔는데, 그동안의 인내가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나에게는 물 묻힌 거즈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조금만 참을 걸 후회도 해봤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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