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고나서야 깨닫는 것들

다시, 보통날

by 조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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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고나서야 깨닫는 것들


오랫동안 꼼짝 않고 누워 있으면 욕창이라는 게 생긴다. 몸이 썩는 것이다. 장기간 누워 있다 보면 침구에 닿는 부분이 지속적으로 압박을 받는데, 이때 혈액 순환 장애로 피부 조직이 괴사하는 것이 바로 욕창이다.

어느 날 침대 시트를 교체하던 중에 등과 발뒤꿈치에서 욕창을 발견했다. 등에 생긴 것은 천 원짜리 만했고, 발뒤꿈치에 생긴 것은 오백 원짜리 만했다.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수시로 몸을 뒤집어주고 말려줘야 했지만, 병원 생활이 처음이니 그런 걸 알 턱이 없었다. 알았다고 해도 온몸이 부서진 상황에서 몸을 이리저리 뒤집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인 물이 썩듯이 몸도 역시 썩는다. 서서히 악취를 풍기며 썩어간다. 썩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새 괴사된 부분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러면 그때서부터야 부랴부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리저리 몸을 굴리고 뒤집으며 바람을 통하게 하고, 매일 깨끗이 소독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원래의 깨끗한 피부로 돌아갈 수 없다. 흉터가 남는다. 완전히 회복된 피부 조직이라도 이전보다 많이 약해져 작은 자극에도 부르트고, 까지고, 피가 나기 일쑤다.


사는 일이란 게 항상 무언가를 잃고 회복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건강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잃어봐야 그 소중함을 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언제나 잃고 나서야 깨닫는 쪽이었다. 오늘이 최악이라 해도 다음날은 차라리 오늘이 그리웠고, 그렇게 늘 어제가 아쉬웠다. 오늘보다는 행복했던 어제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꾸 뒤돌아보며 오늘을 허비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고개는 뒤로 돌린 채, 발걸음은 앞을 향한 채로 한참을 걸어왔다.


# 고통은 늘 새롭다


항생제 내성균.

이름도 참 생소하다. 항생제의 과도한 사용이 주요 원인이다. 우선 살리고 봐야 했기 때문에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너무 들이부었던 탓일까. 혈액 검사에서 항생제 내성균이 나왔다.

사람이 아프면 항생제를 써서 병이 나을 수 있도록 돕는데, 항생제 내성균이 생기면 항생제를 사용해도 낫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즉 항생제를 쓰면 쓸수록 병원균이 항생제에 저항할 힘을 기르게 되어 더 강력한 항생제가 필요하다.


그러다 결국은 어떤 항생제에도 저항할 수 있는 박테리아가 생겨나는데, 이를 슈퍼박테리아라고 한다. 이

균에도 나름의 등급이 있다. 어떤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A항생제는 a를 치료할 수 있고, B항생제는 a, b를 치료할 수 있고, C항생제는 a, b, c 모두를 치료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내가 A항생제 내성균이 있으면 B나 C를 쓰면 된다. 하지만 C항생제 내성균이 있으면, A, B, C 중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는다. 병에 걸려도 손쓸 도리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다행히도 나의 경우는 C에 해당하는 내성균은 아니었다.


항생제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내성이 생기는 항생제 내성균처럼, 고통에 대한 내성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이미 고통에 관한 C등급의 내성이 있으니, A, B정도의 고통 따위는 이제 별것 아니겠거니 하고 말이다. 죽을 만큼의 고통을 겪어봤으니, 넘어져서 까지거나 발목이 삐거나 하는 자잘한 고통은 이제 대수롭지 않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내성은 생기지 않았다. 늘 새롭고 늘 최악이었다. 경험치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별것 아닌 사소한 문제들에 부딪힐 때마다 넘어지고 좌절했다. 별로 뾰족하지 않은 말에도 쉽게 상처를 입었다. 몸이 조금만 이상 신호를 보여도 당장 내일 죽을 것처럼 불안에 떨었다.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죽다 살아났으니 이제 웬만한 것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것 아니냐고. 대단한 착각이다. 그런 건 없다. 아니 혹시 있다고 해도 나는 아니다. 상처가 꽃이 된 사람, 숱하게 깎이고 깎여 물돌처럼 둥글어진 사람. 나는 그런 대단한 사람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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