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04 아차산
아차 싶을 땐 아차산
오랜만에 아차산을 찾았다. 집에서 빈둥거리던 일요일 오후, 날씨가 좋아서 나왔건만 산밑에 도착하니 금세 흐려졌다. 하늘멍은 포기하고 땀이나 조금 흘려볼까. 익숙한 길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탁 트인 풍경을 마주한다. 날이 좋았다면 전체적인 풍경 위주로 눈에 담았겠지만, 볼품없는 하늘에 시선을 도심 곳곳으로 돌려본다.
회색빛 도시 속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전광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 사이에 떠다니는 작은 TV 조각처럼 빨강, 노랑, 파랑색의 영상들이 깜박인다. 도로 위 어디선가 신호대기에 걸려 전광판을 올려보는 사람들에게는 거대한 화면이겠지만 한참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는 그저 점멸하는 등일 뿐이구나.
빽빽한 도심 한가운데 정돈되지 못한 형태로 퍼져있는 빈터로 시선이 옮겨간다. 겨울이라 초록이 무성하지는 않지만 아마 어린이대공원일 것이다. 질서 속에 무질서함이 숨통을 좀 트이게 한다. 도로 위를 흐르는 자동차들의 행렬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다시 좀 답답해진다.
날씨가 안 좋으니 이런 횡재를 한다. 롯데타워에 걸린 구름 조각이 아니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빌딩숲이 아니라, 거기 있는지도 몰랐던 깜빡이는 전광판과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어린이대공원을 발견하는 횡재를.
회색빛 등산은 스스로 회색으로 칠해버린 삶의 부분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게 한다. 나를 좀 봐달라고 열심히 깜박이는 사람, 추억.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자신만의 방식과 형태로 존재하며 나의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사람 혹은 무엇들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