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포기할지라도

다시, 보통날

by 조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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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


내게는 동생이 하나 있다. 연년생인 동생은 나와 친구처럼 자랐다. 우리는 군생활도 함께했는데, 내가 상병이 꺾여갈 무렵에 동생이 이등병으로 전입을 왔다. 형 덕분에 군생활 편히 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나는 동생에게 일부러 더 쌀쌀맞게 대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전역하던 날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동생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대부분의 형제가 함께할 수 없는 군생활의 추억을 공유하면서 나와 동생의 우애는 더욱 돈독해졌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내가 동생을 키웠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가 사고를 당하고부터는 동생이 나를 키웠다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곁에서 밥도 먹여주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운동도 시켜줬다. 시시콜콜한 농담으로 형을 웃게 해주고, 시무룩해져 있는 형을 위로했다. 그냥 철부지 동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새 훌쩍 자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나를 돌보고 있었다. 형 같은 동생이었다. 동생 같은 형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날도 어김없이 동생은 병원을 찾았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인사하고 다시 TV로 눈을 돌리려는데, 동생이 옆 침대에 턱 걸터앉더니 낄낄대며 환자복으로 갈아입는 것이었다. 골절이었다. 축구를 하다가 발목뼈가 조각이 났다고 했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나가서 공을 찼으니 별로 이상할 것은 없었다. 누가 보면 축구선수 지망생인 줄 알 정도로 축구에 열심이었으니까.


그냥 막 웃음이 났다. 어제까지는 보호자로 형을 돌보던 녀석이 이제는 환자 신분으로 같은 병실에 누워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그러다가 문득 이 소식을 접했을 부모님 표정이 떠올랐다. 마냥 웃고만 있을 일은 아니었다. 하나도 모자라서 두 녀석 다 병원 신세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생각하면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병원을 찾은 엄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음엔 동생이 장난치는 줄 알고 긴가민가하다가, 이내 사태를 파악하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큰놈, 작은놈 아주 잘하는 짓이라며 농담 섞인 투로 이야기했지만, 아픈 속내를 숨기지 못했다. 퇴근 후 병원을 찾은 아빠는 단단히 화가 났다. 아빠가 화를 내는 것은 당연했다. 우리는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빠의 화가 조금 누그러지는 기미가 보였다. 눈치 빠른 동생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자신이 형과 같이 있으니 이걸로 당분간은 부모님이 병원에서 밤을 지새우지 않아도 된다는 뻔뻔한 위로를 건넸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며 맞장구를 쳤다. 군대까지 갔다 온 다 큰 녀석들이 아직도 이렇게 철이 없었다. 그래도 동생과 함께 있는 병실은 전보다 아늑하게 느껴졌다.

휑하니 넓기만 했던 공간이 가득 찬 것 같았다.



# 고마워


시간이 갈수록 다리는 점점 굳어져 갔다. 추락했을 때 신경이 많이 다치기도 했지만, 골반을 붙이면서 한 번 더 신경이 손상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지내는 날이 계속됐기 때문에, 관절은 기름을 칠하지 않은 기계처럼 뻑뻑해져만 갔다.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었는지 동생이 다리를 굽혀주었다. 한 손으로는 발목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허벅지를 잡고 온 힘을 다해 굽혔다. 굳어버린 다리를 억지로 굽히는 일은 생각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무릎이 완전히 접힌 듯한 고통을 느끼며 비명을 지르면, 아직 90도도 안 꺾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거의 허벅지에 뒤꿈치가 닿을 정도로 꺾인 것 같은데, 반도 굽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동생은 사진을 찍어서 보여줬다. 어제는 이만큼, 오늘은 이만큼, 오늘이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아졌네 하며 나를 독려했다. 무릎이 90도 정도 굽혀지기 시작했을 때, 거기서 그만 멈추고 싶었다. 굽히면 굽힐수록 고통도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활은 멈추지 않았다. 동생의 바톤을 재활 치료사가 이어받아서 무릎 굽히기 재활은 수개월이나 계속됐다. 나중에는 하도 세게 굽혀서, 무릎 관절이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결국 뒤꿈치와 허벅지가 닿는 데까지 성공했다. 안될 것 같았는데 결국에는 됐다. 아마 혼자였다면 중간에 포기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마도 지금 어정쩡하게 걷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 내가 나를 포기할지라도,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독려해줄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게 되었다.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준 동생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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