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통날
# 정신병동
그래, 이곳은 정신병동이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상처투성이인 사람들이 모인 곳.
처음엔 잘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이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 맞은편 자리에는 군대를 전역한 내 나이 또래의 청년이 입원해 있었다. 청년은 거의 하루 종일 잠을 자거나, 잠에서 깨어도 침대를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말수가 적고 조용한 성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날 청년의 어머니로부터 그의 사정을 전해 듣게 됐다. 청년은 군대를 전역하고부터 조금 이상해졌다고 한다. 말수가 극히 적어졌고, 지나치게 내성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유를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혼자서 무언가를 끙끙 싸매고 있는 것처럼 폐쇄적인 성격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이 난동을 부렸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몹시 화가 난 것 같았다. 몸부림을 치며 울부짖었다. 덩치가 커서 누구 하나 제대로 말리지 못했다. 남자 간호사들이 와서야 그를 겨우 진정시켜 데리고 나갔다. 그 뒤로 청년을 다시 볼 수 없었다. 격리 병동으로 옮겨졌다고 전해 들었을 뿐이다. 평소에는 조용하고 내성적이던 사람이 한순간에 돌변하는 모습에 나는 조금 놀랐다.
다른 환자들의 사연도 귀에 들렸다. 병실 복도에는 멍하니 휠체어에 앉아 시간을 보내던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아주머니는 군대에 간 아들이 죽은 이후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자식을 잃은 상실감에 사는 것이 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감히 내가 그 상처의 크기를 가늠할 수는 없었다.
내가 병실에서 상태가 가장 나쁜 환자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닐지도 몰랐다. 배에는 꿰맨 자국이 큼직하게 나있고, 여기 저기 핀이 박혀 혼자 일어나 앉지도 걷지도 못하는 환자였지만, 어쩌면 고통의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아픈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마치 나도 아프지 않은 사람 같다고 느꼈는데, 눈에 보이는 아픔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아픔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아픔은 수술로 나아질 수 없다. 스스로 치유해야만 하는 아픔이기에 몸이 아픈 것보다 더 치료가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숙제
정신과 의사와의 면담이 있었다. 잠은 잘 자는지, 꿈은 꾸지 않는지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사고 장소에 다시 가봐도 괜찮겠냐는 질문을 했다. 의사는 쇼크를 받을 수 있으니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1년 후 그날, 나는 다시 사고 장소를 찾았다. 그날의 색감, 냄새 같은 것들이 되살아나면서, 그동안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던 부분까지 떠올랐다. 기억을 더듬어가며 그날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가 어쩐지 씁쓸해진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가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의사의 말대로 내가 정말 쇼크를 받을 것인지. 씁쓸하긴 하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산에서 내려올 것인지 말이다. 의사의 말을 듣고 사고 장소를 평생 금단의 영역으로 둔 채, ‘여기서부터는 접근 금지’라는 팻말을 꽂고 울타리를 쳤다면 정말로 거기까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좋지 않았던 기억에 다시 접근하려고 노력함으로써, 나의 한계가 생각보다는 작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끊임없는 시도가 나를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마다 극복해야 할 것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기란 어렵지만 정신병동에 입원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조금 더 명확했다. 아들의 죽음, 군대에서의 트라우마처럼 스스로를 병들게 하는 것들 말이다. 아픔의 종류도, 그 아픔의 정도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결국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말은 쉽게 하지만 나도 아직 사고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크고 작은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지나치게 방어적인 면과 타인에 대한 의심과 불신도 많다. 가끔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면 후회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이 고개를 쳐들고, 그럴 때마다 걷잡을 수 없이 밑으로 가라앉는 경우도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추락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맨홀 뚜껑을 밟지 않는다. 심지어 관람차 놀이기구를 탔을 때는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을 정도다.
숙제다. 평생 풀어야 할 숙제처럼 느껴진다. 답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제한 시간도 없는 평생의 숙제. 식도 답도 정해져 있지 않아 딱히 뭐가 정답이고 오답인지 구분 지을 수 없는 숙제. 출제자도 나고, 풀어야 하는 사람도 나고, 점수를 매기는 사람도 나다. 어렵겠지만 이 숙제를 최대한 빨리 풀고 싶다. 하루빨리 기분 좋게 털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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