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통날
처음으로 휠체어를 탔던 날, 그날의 목적지는 창밖으로 바라만 봤던 병원 내 공원이었다. 작지만 잘 가꾸어져 있는 공원은 환자들과 보호자들, 병문안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곳곳에서 목청껏 울어대는 매미 덕분에 제법 여름 분위기가 났다.
아빠는 나를 소나무 그늘 밑에 데려다 놓고, 저만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담배를 태웠다. 연기는 바람을 타고 내 코끝에 닿았다. 소나무 향과 섞인 담배 냄새가 싫지 않게 느껴졌다.
얼마나 있었을까, 이내 빗방울이 떨어졌다. 한 방울 두 방울 툭툭 떨어지는가 싶더니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공원에 있던 사람들은 비를 피해 건물로 들어가기 바빴다. 사람들로 북적대던 공원은 어느새 텅 비어가고 있었다.
아빠는 내게 괜찮으면 좀 더 비를 맞으라고 했다. 그래서 휠체어에 그대로 앉은 채 비를 맞았다. 가느다란 팔뚝의 솜털에는 빗방울이 송골송골했다. 후텁지근하고 건조했던 대기가 금세 시원하고 촉촉해졌다. 어렴풋했던 풀 냄새가 더 짙어졌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잃었던 것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전혀 새로운 인상으로 다가왔다. 팔뚝에 느껴지는 빗방울의 시원한 감촉, 손으로 문질렀을 때의 미끌미끌한 느낌, 굵어지는 빗방울에 점점 더 크게 고개를 떨구는 풀잎, 그리고 다시 고개를 쳐들며 만들어내는 반동의 연속들. 모든 것이 낯설게, 하지만 기분 좋게 느껴졌다. 내리는 비를 맞는 것처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평범하고 소소한, 어쩌면 조금은 귀찮을지도 모를 그 순간이 당시의 내게는 특별했다.
너무 당연해서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 둘씩 의미를 찾아갔다. 어린아이가 세상을 처음 접할 때의 경이로움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다 큰 어른이 가질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어린아이다움이었다.
그때까지는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입니까?’라는 식상한 질문에 대한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는데, 만약 이 질문을 지금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휠체어에 가만히 앉아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았던 그 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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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66dearmama99 그림 @ordinary_pa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