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의 결핍) 나는 예쁘고 세련되고 싶었다
결혼준비를 할 때였다.
오빠와 나는 사진 찍는 걸 쑥스러워해서
안 찍고 싶었지만..!
모바일 청첩장에 들어갈 사진이 있어야하긴 해서
서울숲에서 야외스냅을 가볍게 찍기로 했다.
뭘 입지?
나는 소문난 실속파(?)라 촬영 두세 시간을 위해
드레스를 대여하는건 생각도 하지 않았었고
나중에도 단정하게 입을 수 있는 원피스를 사기로 했다.
촬영 때도 입고 돌잔치 때도 입겠다고 다짐하며!
백화점 브랜드를 아무리 검색해 봐도
딱 마음에 드는 원피스를 찾지 못했는데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FLOWOOM이라는
디자인 브랜드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단정하면서도 뭔가 러블리함이 적당히 있는...!
내가 찾는 스타일이었다.
홈페이지를 둘러보며 입고 싶은 디자인 1-5위를 정해놓았다. 대충은 정해뒀지만 오빠랑 같이 보면서 고르고 싶어서 밖에서 저녁을 먹으며 쭉 보여줬다.
“이거는 넥라인이 이렇고, 길이는 요정도야..!
이거는 리본이 여기있고, 크림색이야!
어때 보여...? “
내가 골라놓은 5개를 쭉 보던 오빠는
“다 괜찮네~ 네가 좋아하는 분위기들이네!
그렇지만 나는 그중에 이 넥라인은
좀 촌스러운 것 같아. “
응!?!?!?
촌스럽다고!?!?!?
오빠가 촌스럽다고 말한 그 옷은
내가 1순위로 골라놨던 옷이었다.
오빠는 내가 1순위로 골라놓은 옷인지 모르고
한 말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갑자기 얼굴에 열이 오르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런 적은 처음이었는데,
화가 나서도 속상해서도 아니라
수치스러움이 확 몰려오는 것 같았다.
어딘가 숨어버리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니까
눈물만 줄줄 흘렀다. 나도 내가 이상했다.
눈물은 한동안 그치지 않았고,
먹던 음식도 대충 마무리하고 계산하고 나왔다.
당황한 건 오빠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영문인지 갑자기 내가 울어버리니까...
“오빠, 나도 이유를 모르겠는데
촌스럽다는 그 말이 날 되게 아프게 한 것 같아.
나 눈물이 계속 나. 울 시간이 좀 필요해. “
길거리 한복판에서 오빠는 말없이 안아줬고
내 얼굴을 옷 속에 넣어줬다.
나는 그 속에서 좀 더 울었다.
그러고는 다음 목적지로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한참 또 다른 이야기를 하며 환기를 좀 했던 것 같다.
오빠도 왜 눈물이 났는지 먼저 물어보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그 옷이 촌스럽단 말이
나에겐 이렇게 들렸었다.
너의 안목이 촌스러워
네가 촌스러워
나는 부산 촌동네 사람이야
나는 부유하지 않아
나는 초라해
내가 그렇게 애써서 벗어나고 싶었던 부산, 우리 집
벗어나고 싶었던 내 시작점에서
이제는 꽤나 멀리 와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나는 촌스럽고 부유하지 않은 초라한 사람처럼 보인다는 게 나를 참 아프게 했다.
그것도 내가 제일 예뻐 보이고 싶은 대상인
남자친구한테 촌스럽다는 말을 들었으니
내가 부유하지 않고
화목한 가정의 딸이 아닌 사람인 걸
감추고 싶었는데 그걸 들킨 것 같아서,
나의 초라함을 다 파고들어 본 것 같아서 수치스러웠다.
이 정도면 인지왜곡(?) 수준 같기도 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렇게 사고의 흐름이
쏜살같이 그런 식으로 연결되더라고.
결국은 내 자격지심이지 않았나 싶다. 하하...
며칠 뒤에 우리는 FLOWOOM 쇼룸에 가서
골라뒀던 옷을 입어봤다.
그 논란의 촌스러운 넥라인의 원피스는
실제로 입어보니 원단도 빳빳하고 라인이
나에겐 어울리지 않았다.
(조금 촌스러워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재밌는 건, 내가 골라갔던 1-5순위 원피스는
실제로 입어보니 다 마음에 들지 않았었고
점원분이 추천해 준 새로운 원피스가 맘에 들어
그걸로 구입했다. 내 안목을 믿지 말아야 해! ㅎㅎ
그날 이후로 우리는 ‘촌스럽다’를 금기어로 정했다.
오빠는 나에게 예쁘다, 세련됐다, 스타일이 좋다 등등의 말을 더 자주 해주는 것 같다.
더 이상 촌스럽다는 말이 아프지 않다.
그 옷이 촌스러워 보인다는 거지
나랑은 상관없으니까.
나는 예쁘고 세련된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