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감에 대한 결핍(1)

그 상황 속에서 나만 유독 무서웠다

by 유서아

<1-1. 에피소드>

회사생활 5년 차, 대리 2년 차 때 일이다.

발령이 최소 3년 주기로 나는 회사라 나는 세번째 부서로 발령이 났다. 직원도 발령이 나고, 당연히 관리자 직급도 발령이 난다. 그때 만났던 팀장님, 실장님, 본부장님... 그 속에서 쉽지 않은 시간을 2년 정도 보냈다.


직장생활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평상시에는 얼굴을 붉힐 일이 없다. 누구나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위기가 왔을 때 사람들은 본모습이 드러난다.


함께 일했던 팀장님도 평상시엔 별스럽지 않았는데

위기 시에 폭발하던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사람도 견딜 수 없는 상황을 견디는 중이었겠지만

나는 상황도 견뎌야했고, 그 사람의 비뚤어진 통제력과 분노도 견뎌야했다.


하루는, 팀장이 혼자 자리에서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혼잣말로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세게 놓고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분노가 사무실에 떨어진 날,

내 심장은 꽉 얼어붙었다


그 순간, 나는 온몸이 딱딱하게 굳고 머리가 새하얘진 채로 그 자리에 숨죽여 있었다. 너무 무서워서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데 일어나질 못하고 그렇게 앉아있었다. 그러다 몇 분 뒤 배가 싸르르 아파오기 시작해서 화장실을 급히 찾았다.


그 이후로도 업무를 할 때 지나친 통제와 채근으로

팀분위기는 싸하게 돌아갔고, 이따금씩 팀장님의 화가 표출될 때마다 나는 똑같이 얼어붙었다.


신기한 건 팀에 5명 정도 있었는데

다들 힘들긴 했어도 유독 나만 그 상황 속에서 사시나무 떨듯 있었다.


같은 상황에서 팀원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A) 지나간다 이것도 다

(B) 어이없어 진짜... 무시해요 그냥

(C) 일하기 힘들다고 말씀드리려고요


나만 유독 못 견뎌하는 상황이었다는 걸 인지하고선

‘왜’라는 질문이 생겼다.


넘쳐나는 업무에 야근이 일상이었고 소화가 되지 않아 점심과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좀비처럼 그렇게 출퇴근을 했다. 회사에서도 회사밖에서도 그 팀장님한테 받은 스트레스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피부와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해지고 가족과 남자친구한테도 하루하루 예민해져 가고 웃을 일이 없는, 도축장 끌려가는 소처럼..그렇게 도망갈 줄도 모르고 힘들다고 주저앉는 법도 모른 채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왜’ 나만 이러고만 있을까


어딘가 아팠으면 좋겠다 생각한 적도 있다.

어딘가 아파서, 저 아파서 못하겠어요라고 말하면

스스로 포기한게 아니라 어쩔 수 없어 보여서였을까


이러단 정말 병이 날 것 같아서 보험도 더 들었다.

내가 나답지 않아지고 있을 때, 심리상담사인 고등학교

친구의 권유로 나는 심리상담센터를 처음으로 찾았다.


상담센터 문을 열고 들어갈 때까지 머릿속엔 또 온갖 생각들이 떠다녔다.


나만 유독 취약한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가족이랑 남자친구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내가 이상한걸까

상담받으러가는 이것도 호들갑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가라고 하면 어떡하지

나 고장난걸까 무섭다...

이것마저 숙제처럼 다가온다 잠이나 더 잘까

에라 모르겠다


야근으로 쌓인 수당은 그대로 상담비용으로 나갔다.

병주고 약주고인셈이지. 그래도 뭐라도 해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꾸역꾸역 상담센터로 향했다.


아늑한 공간이었다. 방마다 선생님이 계셨는데

들어가기 앞서 푹신한 라운지 쇼파에서 여러장의 질문지를 먼저 작성했다. 유년시절, 청소년기, 성인기마다 질문이 나눠져있었다.


한참을 작성하던 중에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서아씨, 반갑습니다. 질문지는 차차 작성하셔도 됩니다. 오늘은 편하게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 방까지 어떻게 오시게 되었는지, 상담을 통해 이루고자하는 목표가 있으신지 등등이요 ”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해야할까

머리가 다시 복잡해지고 목구멍에 뭐라도 걸린듯

한참 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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