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구나, 나는 그랬었구나.
<1-2. 그랬구나 나는 그랬었구나>
왜 오게 되었냐는 질문에 회사가 힘들어서 왔다고 했다
상담목표를 이야기할 때는 상황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동안 나는 어려운 일들을 만났을 때 극복하거나 피하거나 해왔는데, 그 외에 방법이 있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상담은 열 달 정도 계속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선생님을 만날 때마다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이상하리만큼 이야기를 하다보면 매번 눈물이 났다.
매주 주제가 있었던 건 아니고 이번한 주는 어땠냐는 대화 속에서 내가 한 생각들, 느낀 감정을 주고받았다.
주로 힘들어서 견딜수가 없다는 하나의 메세지였고 그간 상황을 말했다. 그냥 많이 울었다. 우는 것도 힘들었다. 내가 고장난 것 같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하게됐다.
처음에 선생님과는 조금 대면대면 했다. 상담의 방식도몰랐고, 50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쪼개 쓰는지도 모르겠었다... 그 와중에도 선생님은 언제나 내 이야기를 차분하게 메모하셨다.
몇회차 였을까
유년시절,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내 기억 속에 아빠는 잘 웃지 않으셨던 것 같다.
경상도 특유의 묵묵함일 수 있겠지만 어린 나에겐 아빠의 무표정이 마치 화가 난 사람처럼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오랜기간 자주 술을 드셨다. 내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저학년때부터 대학생이 될때까지의 잔상이니 꽤 긴 시간이었다. 술을 드시고 오시는 날이면 집에는 고성이 가득했고, 언니와 나는 작은방에서 이불을 덮고숨죽여 울었던 장면이 떠오른다.
엄마는 아빠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술이란 걸 드셔서 잠깐 이상한거라고, 무서워하는 나를 달래주셨다.엄마는 아빠가 엄마만 보면 화를 내니 아빠를 피해서 잠깐 집밖으로 나가신적도 있는데 그때도 꼭 우리한테는 엄마 멀리가는거 아니라고 바로 앞에 있을거라고 말씀하셨었다.
상황을 한창 설명을 하다보니, 선생님이 물었다.
“그때 서아씨 기분은, 감정은 어땠어요?”
“음... 큰 소리가 많이 무서웠어요. 매일 저녁 조마조마했구요. 저녁에 아빠가 들어올 시간이 넘으면 그때부터오늘도 일이 나겠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느꼈고...엄마가 집을 떠날까봐 두려웠어요 ”
신기하게도, 생각이 아닌 감정을 입밖으로 내니 이불속에 있던 어린시절의 내 마음에 탁 연결되는 것 같았고...나는 나도모르게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그때 어린 서아씨는 너무 무서웠을 것 같고,
내가 보호받거나 지켜지지 않는다 느꼈을 것 같아요.“
그런 서아씨 마음을 가족들과 이야기하면서 다뤄본적은 있어요?“
“글쎄요... 엄마는 아빠를 사랑으로 이해해야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아빠도 힘든일이 있나보다, 얼마나 속상하면 저러실까 등등... 제가 얼마나 아빠를 미워하고 있는지, 그 집에 사는게 얼마나 힘들고 두려웠는지에 대해 엄마와도 말하지 못했어요.“
“지금 회사에서의 서아씨와 비슷해보이진 않나요?”
순간 ... 놀랬다. 아...?
책상에서 욕을 하고, 물건을 신경질적으로 던지고
인상을 빡 쓰고 있는 팀장님 앞에서 얼어붙어있는 나.
아빠 앞에서 있는 어린 나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태도가 나에게 그대로 스며들어있었다.
미운사람을 미워해도 되고, 욕을 해도 되고, 무시해도 되는데 나는 미움이라는 감정을 품고있으면 안되는것처럼 그 사람을 무조건 ‘이해’하는 방법을 택해왔다.
내가 안전하지 못하다는 두려움은 뒷전으로 두고, 그 사람만을 ‘이해’하려고 했다.
미움이라는 감정을 다루는 카드가 나에겐 ‘이해하기’ 한장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해가 안될땐, 이해하지못하는 나에게 화살을 돌렸다. 내가 이상한거라고.
저 사람을 미워하는 내가 미성숙한 사람이라고.
그 굴레속에서 그렇게 혼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었던거였다.
그랬었다. 나는 그래서 힘들었던 거였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어린 서아가 아니다.
30대의 서아는 위협을 주는 사람에게 엄마가 쥐어준 ‘이해하기’카드 말고도 다양한 카드를 꺼낼 수 있다. ’무시하기‘, ’불쾌감을 드러내기‘ , ’자리피하기‘ , ’직장 내 고충상담 또는 신고로 상황바꾸기‘ 등등!
내가 심리상담센터를 찾아온것 자체도 30대 서아가 할수 있는 카드 중 하나였다.
그날 상담을 마치고 나는 꽤나 홀가분했다.
이유를 알아내서...그리고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어서.
나라는 사람은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지금은 아빠가 금주를 하신지 10년이 다 되가고, 우리가족에게 다 지난일이 되었지만 내 마음에 30년이 넘게 녹슨 구덩이로 남아있었구나. 미처 채우지 못하고 시간이 흘렀고, 우연히 회사일로 다시 그 오래된 구덩이에 난 빠진거고...
그렇지만 이제는 그 구덩이에서 나오는 방법도, 채우는 방법도 알듯하다. 내가 안전해지는 방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