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전하다
<1-3. 나는 안전하다>
나는 사무실에서 몇 가지 단계를 만들어 테스트를 해봤다.
무섭다고 생각되는 상황이 생기면, 1단계-자리를 피해서 화장실이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다. 2단계-숨을 4초간 들이마시고 6초간 천천히 내뱉는다. 3단계-내 양손으로 팔을 감싸고 속으로 ‘나는 안전하다 안전하다’를 되뇌인다.
출근하면 또 같은 날들이 반복되었지만 나만의 방법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마음이 놓였고, 실제로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었다. 나는 더 이상 혼자 얼어붙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무섭게 만드는 사람들을 적어도 속으로는 마음껏 미워하기로 했다. 저 사람이 이상한거라고 !
이후에 나는 같은 부서, 같은 업무, 같은 상사 밑에서 2년을 버텼다. 업무성과도 내고 모르는건 배워가면서 혼자 단단해지는 시간을 겪어냈다. 다행히 회사에는 배울 점이 많은 선배들도 많았고, 기꺼이 시간을 내어 나를 가르쳐준 사람들이 있었다. 참 감사한 일이었다.
나 스스로 업무든, 관계든 조금은 단단해졌을때
팀장님께는 면담을 신청해 업무를 하기 힘든 이유와 팀장님과 함께 일하는 과정들에서의 고충에 대해 나름대로 최대한 나이스하게 말씀드렸고,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는 모르겠다) 사내고충센터에는 과중한 업무를 조정을 해주거나 타 부서로 발령을 내달라는 요청을 했다.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나는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
그 다음 부서발령이 있는 시기에, 팀장님과 실장님이 발령이 나셨다. 그리고 새로운 팀장님과 실장님이 오셨고 사무실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다.
새로운 관리자분들이 오시면서 업무도 조정이 되었고, 그간 얼마나 고생많았는지 또 그 속에서도 만들어낸 성과에 대해서도 수고많았다고 해주셨다. 그리고 업무에 최선을 다 하고 있는걸 알기에 그 결과에 대해서는 질타나 압박하지 않을 거니 쉽진 않겠지만 즐겁게 일해보자고 하셨다. 그렇게 존경할만한 분들과 그렇게 또 1년을 근무했다.
여전히 같은 부서였지만, 마음가짐은 사뭇 달라졌다. 전과 똑같이 바빴지만 사이사이 웃을 수 있었다.
너무나 다행히도, 악몽으로 끝날 것만 같았던 그 부서에서의 기억이 마지막 1년 덕분에 나에겐 나름 해피엔딩이 되었다.
30대의 내가 숨쉬기위해, 살기위해, 안전하기위해 바꾼 상황이었다. 물론 운도 따라줬고.
나는 그렇게 안전해졌다.
회사 밖에서는 아빠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아빠를 미워하는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나는 아빠가 술을 많이 드셨던 과거일에 대해 엄마와 언니 그리고 나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해야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야 내가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튜브에 부모님한테 받은 상처 극복하기, 부모님 미워요, 상처주는 가족 등등의 키워드로 검색도 많이했다.
오은영 선생님의 ‘화해’라는 책도 읽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마음에 와닿는 내용이 있었는데, 꼭 아빠와 내가 직접적으로 그때일을 회상하면서 사과하거나 용서하지 않아도 스스로 그 과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어른이 된 내가,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어린 나를 위로할 수 있었다.
아빠한테 하고 싶었던 말 듣고 싶었던 말이 이런거였다라면서 글로 적어보면서 흘려보낼 수도 있었다.
특히 결혼준비를 하면서 아빠에 대한 미움이
어느 순간 눈 녹듯 녹아내리는 걸 느꼈다.
내가 결혼할 사람이 있다고 처음 부모님께 말을 꺼냈을 때, 아빠는 경상도 특유의 묵묵함으로 인성이 성숙한지, 건강한지, 부지런한지 몇 가지만 물어보시곤 긴말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첫인사를 드리러 부산에 온 오빠를 대하실 때...내가 보지 못했던, 알지 못했던 아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빠는 첫마디부터 오빠에게 존대를 하셨고, 경상도스타일로 덤덤하고 반갑고 편안하게 맞아주셨다.
그 이후로 아빠는 남편을 아빠만의 방식으로 예뻐해주셨고, 남편도 아빠에게 아들같은 사위가 되어주었다.
두 사람은 많이 웃는다.
“어 그래 유서방 밥은 잘 먹고 다니재~”
“예 아부지~ 진지 잡수셨습니까..! ”
편하게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오빠가 사랑받는걸 보고있으니 마치 내가 사랑받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아빠한테 오랫동안 바라왔던...
그렇게 조용히 내 마음속 구덩이가 조금씩 채워졌다.
긴 시간동안 너무 아빠의 단편만 보고 밉다, 부끄럽다, 무능하다 생각했던 것 같아 너무 죄송스러웠다. 아빠도굴곡진 삶을 70년 넘게 살아내신 강한분이셨는데 그걸몰랐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결혼식 당일 아빠 손 잡고 입장을 할 때까지도 나도, 아빠도 무덤덤하게 그렇게 자리에서 역할을 했다. 따로 말로 감정을 나누진 않았다. 그러다 두세달 후에 결혼앨범이 나와서 부산에 가져다 드렸었는데 아빠가 혼잣말로 하시는 말씀에 눈물이 차올라 혼이났다.
“그래 이거는 내 죽을 때까지 간직해야겠다”
그 한 문장이 내 마음을 순간적으로 정말 따뜻하게 가득 채웠다고 해야할까. 신기하게도...아빠에 대한 미움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한순간에 사라졌다.
나는 나만 몰랐지 그동안 늘 사랑받는 막내딸이었다.
생활고로 힘드셨지만, 그래도 가장으로서 늘 가정을 지키신 아빠였다. 나는 지켜지고 있었던거였다.
이제는 아빠를 안아드리고 싶다. 애틋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