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결핍(3)

첫 취미가 생겼다

by 유서아


취향은 어떻게 생기는걸까.

일단 뭐든 관찰하고 경험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의 남편과 연애시절, 결혼하고 1년 남짓 오빠의 취향이야기를 듣고, 함께 또 해보면서 자연스럽게 나에게도 스며든것도 있다.


스시를 먹어도 간장에 밥을 찍어먹는게 맛있는지,

생선에 간장을 발라먹는게 맛있는지

청바지를 골라도 연한색이 좋은지 짙은색이 좋은지

발라드를 들어도 박효신, 성시경, 김범수, 나얼의 감정표현이 어떤지, 나에겐 어떤게 더 와닿는지

여행을 가도 어떤걸 경험하고 싶은지(도시, 자연, 사람들, 음식 등) 등 이야기를 나눴었다.


사소한 일상에서 ‘나에게 편하게 다가오는 것, 내가 좋은 것’을 찾아내기 위한 레이더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일상 모든게 참 재밌고 흥미로워졌다.


음식을 먹고, 옷을 고르고, 음악을 듣고, 데이트장소를 찾고, 전시회에서 그림이나 사진을 볼때 등등

싫어! 좋아! 이분법적인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이런걸 선호하는구나. 나는 의외로 이게 더 눈이가는데 싶고 또 어떨땐 사람들이 좋다고하는덴 다 이유가 있어 하며 대세를 따르기도 한다 하하.


나는 무난한 컬러에 패턴으로 포인트가 있는 옷을 좋아하고 구두나 플랫보다는 운동화, 특히 뉴발란스 느낌이좋다. 그림은 추상화보다는 풍경화를 보는게 맘이 편하고 바다보다는 산, 나무, 들판 등의 이미지가 좋다. 내 입에 소고기 부위는 다 맛나고, 돼지고기는 삼겹살이 제일 맛있다. 음악은 메탈이나 힙합은 조금 어렵고 ... 멜로디가 도드라지는 잔잔한 어쿠스틱이나 템포가 느린 곡에 더 맘이 간다. 사람들이 많고 북적거리는 장소보다는 한적하고 대로가 넓은 조용한 동네에 발이 더 간다. 시간이 지나면 바뀔수있을지라도 지금의 취향은 그렇다!


그리고 취향찾기와 동시에 새로운 취미를 가져보자 다짐했다. 외부관찰을 통해 생긴 취향이 발현되는게 또 취미아닐까.


해야할것들이나 처리해야할 숙제, 해결해야할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하고싶어서, 즐거워서 하게되는 어떤 것을 갖고 싶었다.


그동안 나에게 휴식은 외부로부터의 단절, 내면으로부터의 단절인 ‘잠’ 이었다. 하루종일 자고나면 기계가 전원을 끄고 켜듯 그렇게 리셋이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회복이나 채워짐의 느낌은 없었다.

뭔가를 ‘함’으로써 쉼이 된다는 걸 느껴본적이 없었다.


남이 좋다는 감사일기도 적어보기도 하고,

헬스장을 등록해 운동을 해보기도 하고,

도자기를 빚어보기도 했는데 나에게 쉼이 되진 않았다.

여전히 숙제같았다.


그러다 어느날, 남편의 아이패드에 깔린 프로크리에이터라는 드로잉어플을 발견했다. 그래 나 디지털드로잉..을 하겠어!!


프로그램을 잘 활용하고 하고싶어서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고, 처음에 한장그리는데 시간이 많이걸렸지만 꾹 참고 해나갔다.


처음이었다.

누구도 칭찬해주지 않고 누구도 보는사람 없지만 혼자만의 만족으로 뭔가를 재미로 한게.

일주일에 2일은 꼭 그리게 되었고 아이패드와 프로크리에이터라는 어플은 나의 장난감이 되어주었다. 그러다 인스타그램에 한장씩 올리게 되었고, 미미한 수준이지만 몇명의 얼굴모르는 사람들도 내 그림을 보고 있다. 어떤 결과(그림으로 유명해진다거나, 이모티콘으로 돈을 번다거나 등등) 를 바라지 않고 정말 취미의 영역으로 나를 채운다는건 참 뿌듯하고 기쁜일이었다.


어쩌면 나에게 취향이 없었던 건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없어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건 결국 자기연민에서 기인한 결핍을 포장한 단어였을뿐, 일상을 애정어린 눈으로 소중하게 바라보지 못한 내 선택이었던건 아닐까. 해야할게 많다는 핑계로.


결국 다 내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디지털드로잉을 취미로 하고있는 것처럼.

언제든 나는 더 충만한 인생을 선택할 수 있다.


아이패드를 켜고 펜을 들면,

나의 하루에 오직 나만의 오로라가 번진다.


*마음 내킬 때 그린게 벌써 82개다.

- 굽슬이의 하루 (남편이 모델인 건 비밀!)

이전 14화취향의 결핍(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