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휴가, 해야하는것들로부터 해방

나에게 집중하는 시기

by 유서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기가 왔다.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아서 32주까지 근무를 하고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출산휴가는 90일(출생일 뒤로 45일 필수)이다. 사람따라 출생 이후에 집중해서 쓰고싶어하기도 하고, 안정이 필요해서 전에 쓰기도 한다. 나는 출산 전 40일 정도 출산 후 50일 정도 계산해서 휴가에 들어갔다.


업무가 조금 여유있고 퇴근 후에 에너지가 남는 경우였다면 모르겠지만, 회사가 너무 바빠서 퇴근하면 녹초가 되는 쳇바퀴 속에서 출산준비도 못하고 끌려가듯 바쁘게 움직이고 싶지않았다. 더구나 임신성당뇨 수치가 들쭉날쭉해서 좀 더 관리가 필요했고 피로도도 낮춰야하는 상황이었다.


업무는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마무리 짓고 나와 낭만이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인만큼 내 속도대로 차분하게 채우고 싶었다.


이렇게 쉬어본 적이 없었다.

직장인에게 방학이라는게 없으니까.

해야하는 일들로부터 벗어난 적이 없으니까.


출산휴가를 내고 머릿속엔 출산준비 체크리스트가 가득 찼지만, 3일 정도는 오롯이 몸 가는 대로 쉬었다. 늦잠도 자고 그동안 긴장되있었던 모든 신경들을 이완하고 싶었달까. 빨리뛰는 심장, 빨라지는 말, 빨라지는 행동을 늦추고 내 속도대로 다시 세팅하는 시간이었다.


3-4일이 지나고 하루 루틴을 다시 정해봤다.

이건 자발적인 동기라 해야만하는 숙제가 아니다.


알람없이 일어나는 늦은 아침, 가벼운 요가를 하고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먹는다. 전날밤 밀린 집안일을 하고 샤워를 한다. 급할게 없다 나는. 졸리면 낮잠을 자고 노트북을 갖고 카페를 가거나 동네 도서관을 찾는다. 컨디션이 괜찮은 날에는 저녁을 준비해보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오빠가 퇴근하고 오면 같이 맛있는 저녁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산책을 한다.


낮시간이 업무처럼 활용가능한 시간인데 출산준비에 필요한 것들을 알아보고 정리해보곤 했다. 리스트업을 하기 전까지 나는 출산, 엄마가 되는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서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우리 가정을 계획하는 업무를 맡은 것처럼!

회사일 하듯 마음을 잡고 시작해보았다.

이건 휴가가 아니고 이직이다 생각했다 하하


우선, 각종 지원정책(정부, 서울시, 해당 구)을 파악했다. 어느 시기에, 어디서, 뭘 신청해야 하는지 A4용지에 한눈에 보이게 정리하니 가닥이 보였다.

대부분 지원금 형태였고, 다만 사전/사후정산인지 현금/바우처/물품이거나였다. 지원주체별로 신청루트가 여러군데여서 좀 헷갈리긴 한다. 지원정책이 있는건 좋은데 지금보다는 신청접근성이 좋아져야 할 것 같다.


다음은 출산준비용품이었다. 나는 수술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제왕절개시 필요한 병원준비물, 조리원준비물을 하나씩 챙겼다. 캐리어 두 개를 옷방에 펼쳐두고 리스트업 후 하나씩 채워갔다. 유튜브에서 정보를 얻기도 하고, 최근에 출산한 회사선배가 고맙게도 정리해 준 메모도 참고했다.


신생아 물품도 빠질 수 없다. 오빠랑 내가 회사에서 지원받는 물품을 먼저 알아보고, 이외에 미리구매해도 괜찮은 것들은 미리사서 써보기도 했다. (스토케 의자, 젖병세척기 등) 그리고 감사하게도 주변에서 물려받기도 했다(기저귀 갈이대, 수유용품 등). 대여할 수 있는 건 대여하기로 했다. 세탁할 건 미리 했다!


마지막으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공부...! 육아책으로 엄마되기 공부를 한다. 전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집 앞 작은 도서관이 있는데 이곳이 나의 쉼터였다. 책냄새도 좋고 언제든 열린 공간이라는 것도 좋았다. 장서수가 많진 않지만 육아코너로 가서 제목만 읽어도 어떤 주제들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마음가짐, 양육자태도, 수면교육, 수유방법, 발달단계 등 큰길은 알 수 있었다. 몸이 무거워지고 나서부터는 밀리의 서재를 이용해 전자책으로 읽은 것들도 있다.


책 내용을 다 기억해야지 라는 접근은 아니었고, 필요란 시기에 다시 이런 책들이 있었지 하며 찾아볼 수 있는 인덱스가 생겼다는데 의미를 뒀다.


<임신기간 중 읽은 육아서적들>

(내가 기억하고 싶어서 남기는 리스트)

1. 하루 5분 성경태교동화

2. 임신출산육아 대백과

3. 삐뽀삐뽀 119(다는 못 읽음)

4. 그럼에도 육아

5. 영혼이 강한 아이로 키워라

6. 똑게육아

7. 0세 교육의 비밀(엄마가 우리 키울 때 읽으신 책)

8. 부모라면 유대인처럼

9. 나는 매일 도서관에 가는 엄마입니다

10. 엄마의 두뇌태교

11. 아이의 뇌

12. 비폭력대화

13. 부모의 어휘력

14. 힘 빼고 육아

15. 초보부모 방탄육아, 임신출산 미리보기

16. 첫 1년 움직임의 비밀

17. 잘 먹고 잘 자는 아기의 시간표

18. 아이의 잠재력을 이끄는 반응육아법

19. 베이비몬테소리 육아대백과

20. 아비투스 (육아책은 아니지만 인사이트 얻음)


몇 가지 과업을 찬찬히 하다보니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갔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그림이 그려져서인지 이때 이후로 안심이 되었다. 스스로에게 여유를 허락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달력을 보니 36주였다.


36주차에는 보고싶었던 친구들, 회사동료들을 집에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후에는 시부모님, 엄마, 언니가 시간 될 때마다 방문해 응원해주셨다.


당연히 일주일에 한 번씩 산부인과 정기검진도 있다!


37주부터는 생각보다 체력도 떨어지고 몸이 무거워서 혼자 외출이 어려워졌다. 뭘 하려고 했어도 못했을 것 같다. 뭐든 미리미리 준비해두길 잘했다 싶었다. 입원전날까지 집순이 생활을 열흘정도 하게됐다.


* 낭만이 나오기 전에 임신기간의 일들과 감정을 정제되진 않았지만 흐릿한 기록으로라도 남기는 게 목표였다. 집순이 생활하며 이마저 달성하게되서 뿌듯하다.


오롯이 나를 돌봤던 한 달 남짓한 시간, 참 평온했다.

자연스럽게 잠들고 일어나고, 잘 챙겨먹고, 가사를 돌보고,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일상이 주는 안정감을 정말 충분히 만끽했다.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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