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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jo Jan 13. 2021

치킨 값했던 피아노 이야기

엄마가 좋아하는 피아노 몰래 팔아버린 이야기

사라지고 나서야 의미를 갖는 것들이 있다


부모님 세대에게 피아노는 꽤나 쿨해보이는 교육이었다. 어릴적 피아노를 치던 친구들이 부러워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몰라도, 또래 친구들을 보면 체르니 100번 정도는 마스터 했다는 놈들이 널렸다. 나는 조금 그래도 레벨이 높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장장 7년의 수련 끝에 체르니 50번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재능없음을 깨닫기에 7년은 좀 길었다. 학예회 한답시고 기계처럼 반복했던 곡 이외에 칠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 나이가 드니 음감도 흐릿하다. 남은 건 기억 뿐이다. 연주라기 보다는 운동에 가까웠던 날들. 부모의 욕망을 아이에게 투영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나는 어머니의 욕심에 열심히 부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던 것 같다.


우스운 일이지만, 정작 우리집이 피아노를 사게 된 날은 재능없음을 깨달은지 7년이 지나서였다. 어머니는 그 욕망이 해소되질 않았는지 동생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네 식구 살기도 비좁은 낡은 아파트에 흉물스런 중고 피아노가 들어왔다. 낡은 피아노는 안 그래도 가난한 우리집의 느낌을 증폭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악기를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나는 방금 전에 언급한 학예회 넘버를 유려하게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치자 마자 느꼈다. 이 피아노는 파#b#b~ 소리를 내며 자동 오토튠 기능을 지원했다. 인생 절정의 절대음감을 가졌던 나는 판단을 내렸다. 


"이건, 악기가 아니라 합판으로 이뤄진 나무떼기구나."


동생은 안타깝게 나보다도 예술감각이 부족했다. 또래 학원생들에 대한 열패감으로 학원을 나와야만했고, 피아노도 아가리를 닫고 조용히 몇날 몇달을 보내게 되었다. 그 뒤로는 흔한 풍경이 벌어졌다. 빨랫감을 놓는 다이로, 잡동사니를 얹는 공간으로 전락했다. 건반의 울음소리가 파#b든 파$&이든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어머니께 이 괴물을 버리자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가끔 치라며 극구 반대를 했다. 어머니는 이제 하다하다 안 되니 피아노의 연주 기능 대신 전시 기능으로 욕망을 채우게 된 건 아닐까 생각했다. 또 그렇게 몇년이 흘렀다. 


2년 전, 나는 빨래다이. 아니 피아노를 집안에서 몰아내기로 결정한다. 집에 있노라면 창 밖에서 들리는 "중고가전제품~ 팔아요오~"하는 아저씨의 목소리는 결정을 부추기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반갑게 전화를 받고 온 아저씨는 이리저리 피아노를 둘러봤다. 누가봐도 괜히 왔다는 표정이었다. 전화로는 분명 반가운 목소리였는데, 그건 이 갈색 나무떼기를 보기 전 얘기였다. 


"만이천원"


아저씨의 짧은 한 마디에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 놈을 이고 산 노력이 고작 만이천원이란 말인가. 나는 오늘 같은 역사적인 날, 치킨 한 마리라도 건져야겠다는 생각에 말했다. 


"만오천원!"


아저씨는 기름값을 운운하며 투덜댔지만, 아마 예상 범위 안의 가격이었을거라 생각한다. 아니면 헛걸음한 게 싫었던지. 결국은 그 괴물을 질질 끌고 데려가셨다. 그날 내가 치킨을 정말로 먹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늘 피아노에 관한 소설을 읽고 내가 버린 피아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무식하게 자리를 채웠던 그곳에 새로운 것이 들어왔다. 그게 있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건 빨래를 말리는 기능 밖에 할 수 없었을 거다. 그래도 가끔은 그립다. 귀찮고 너무나 당연히 여겼던 것들은 사라지고서야 내게 진짜 의미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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