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화 하지 못한 성취는 대개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주짓수하는 아저씨 7명 정도가 둘러 앉은 자리였다. 최저 연령은 아마 37세 정도. 그 중 쉰이 넘은 관원이 '진짜'를 강조하며 말했다.
"이렇게 자신감을 주는 운동은 진짜, 평생 처음이라니까. 이 한 줄이 진짜 아무것도 아닌 거 같아도...나는 진짜 막 감동이 있더라고"
여기서 한 줄은 그랄을 말하는 것으로, 승급을 의미한다. 마침 그날 한 줄이 늘은 나를 포함하여, 좌중은 간증에 취한 신자처럼 '맞아, 맞아'을 외쳤다. 이 때, 타 지역에서 도장을 운영한다는 관장은 '요즘애들'에 대한 시각을 보탰다.
"요즘 학생들 가르쳐보면요. 그렇지가 않어요. 이게 너희의 노력이 들어가 있는거다. 자부심을 느껴야한다. 항상 얘기하는데 몰라 그걸"
주짓수 이야기에 요즘애들에 대한 이야기를 섞으니 메인 안주가 됐다. 관원들은 다들 공감하며,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만한 적절한 정도의 침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그런게 있는 것 같아요"
한 관원은 자신에게 집중되길 잠시 기다렸다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린 애들은 칭찬 받을 일이 많잖아요. 그런데 어른들은 누가 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받고 나니 기분 좋은 거죠."
"음"
이번엔 '맞아 맞아' 대신 "음."소리가 났다.
들어보니 참 맞는 말이다. 확실히 어릴 땐 성장을 확인하기 쉽다. 공부를 하면 시험 점수가 나오고 심지어 가만 있어도 키가 크고 학년이 는다. 어른도 아이에게 하는 칭찬은 관대하다. 한 마디로, 어린이는 그냥 살다보면 자연스레 성장을 확인하며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어른은 그렇지 않다. 회사에서 칭찬이나 좋은 평가를 얻기도 어렵고 (그 평가를 납득하기도 어렵고), 혼자 어떤 공부를 한다 한들 성장을 스스로 자각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면에서 평균나이 40세들도 공감을 하지 않았을까. 몸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고, 전문가가 인정을 해주고, 가시적으로 '한 줄'을 붙여주는 것. 서른 넘어 이것만큼 확실한 칭찬과 성장의 증거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러고보니, 요즘 인스타그램 광고에 빈번히 뜨는 단순 레벨업 게임도 이와 연관이 없진 않을 거다. 한낱 무의미해보여도 어른들은 숫자로 보이는 성취와 인정에 목말라 있다.
물론, 내가 '숫자'를 궁극적으로 추구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건 단지 수단일 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진정한 성장은 '숫자'가 아니라 내면에 있다. 그러나, 가시화하지 못한 성취는 대개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잘 하고 있다고 박수쳐줄 사람, 그리고 내가 어디까지 다다랐는지 돌아보고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지점이 필요하다.
어른들에겐 그런 세이브 포인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