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눈탱이를 맞고도 주짓수 도장에 가는가
어제 눈탱이를 직격으로 맞았다.
나는 상대의 등을 잡으려 했다. 상대는 잡히지 않으려 몸을 비틀었다. 이 때 팔꿈치가 같이 돌았고 나는 (빠직 소리와 함께) 눈으로 막았다. 반사적으로 '괜찮'까지는 나왔는데 으엌 소리가 났다. 그 다음엔 으어엌 소리가 났다. 아마 눈알이 관자놀이까지 들어갔다 나온 거 같은데 앞은 멀쩡히 보였다. 그러니까, 그래도, 오늘도 주짓수는 가기로 한다.
왜 갈까. 일단, 내가 7개월간 주짓수를 하고 있다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긴 하다. 30년 넘게 운동이란 걸 거들떠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럼, 그렇게 주짓수가 좋냐.
그건 '아직' 아닌 것 같다.
① 취미 뭐에요 - 주짓수요 - 그게 뭐에요 - 그건 말이죠. 하며 상대적으로 비주류인 취미를 남에게 설명하는 게 좋다. ② 불의에 맞딱뜨렸을 때, 도망가는 시나리오 말고 쥐어패는 시나리오를 상상할 수 있어서 좋다. ③ 도복을 입고 거울을 보면 좋다. ④ 무도인이라고 되덜 안 하는 농을 칠 수 있어 좋다. 아무래도 이건 '주짓수를 하는 사람'이란 이미지를 좋아하는 수준에 가깝다. 아무래도 이건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예쁘고 잘생긴 이성와 같이 길거리를 걷고 싶어서 얘랑 사귀긴 사귀었는데, 실제로 얘를 사랑하냐 물으면 대답을 못하겠는 그런거.
하지만, 내 경험상 사람도, 취미도 한 순간에 빠지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없었다. 좋아하는 데에는 항상 연습이 필요하다. 그게 좋은지 안 좋은지 판단하려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한다. 난 왜 좋아하는 게 없지, 왜 이리 심심하지 불평하는 놈들의 공통점은 무언가 새로운 걸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건 마치 모쏠이 집에 가만히 있으면서 자만추로 여자를 사귀겠다는 생각 같은거다. 갑자기 찾아오는 '번쩍'하는 느낌은 애니에서나 나오는 일이다, 대부분은 그냥 아아아아주 먼지같은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발전해나가야 한다. 해보고 재미가 생기면 좋아지는 거고, 재미가 없어지면 그만 두고 다른 걸 찾으면 되는 일이다. 말 그대로 재미는 '붙이는' 거다.
여기서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느낌이 안 오는 데 재밌을 때까지 돈 쓰고 시간 쓰면 시간낭비한 거 아니냐.
절대 그렇지 않다. 취미(재미)에 관해 또 하나 재밌는 점은, 부익부 빈익빈마냥 촘촘할 수록 더 많아지는 점이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서 '이스라엘 유대인 영상'을 봤다고 있다고 치자. 이걸 보고 유대인에 관해 재미를 붙였다면, 나치의 이야기로, 나치의 이야기에서 2차세계대전 이야기로, 러시아로, 혁명사로 이어진다. 꼭 유대인에 머무르지 않아도 여기저기 유목하며 다양하게 뻗어나갈 수 있다.
아니면 뻗어나가지 않고 유대인만 좀 찍먹하다가 멈춰도 괜찮다. 일단 깃발을 하나 찍어두면 된다. 훗날 피라미드든 구약이든 뭐든 관심이 갔을 때, 지난 유대인의 이야기 깃발을 떠올리면 된다. 당연히 이해도 빨라지고, 지식은 확장한다. 무언가 새로운 관심사가 생겼을 때 가까운 곳에 연결점(깃발)이 있다는 건, 그 사람의 취미 뿐 아니라 시각과 지식을 넓히는 데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이종(異種)간 취미는 촘촘함을 발휘하기 어렵다. 프랑스 역사를 좋아하다가 테니스 코트 서약을 보고 테니스를 배우게 되는 것만큼 어렵고 터무니없다. 아무래도 그렇기 때문에 주짓수에 더 매달리는 거 아닐까. 나는 운동이란 분야에 깃발을 세워본 적이 없으니까. 이걸로 내 취향과 삶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가 숨어있다.
정리하면, 나는 '주짓수를 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좋으니까 해봐야지. 그리고 하다보면 좋아지겠지. 좋아지면 그때는 진짜 '주짓수를 하는 사람'이 되겠지. 정도의 마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