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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jo Apr 24. 2024

내 팔과 티셔츠 사이의 요원한 거리

제레미 앨런 화이트 따라잡기

오늘은 시덥잖은 개인사를 기록하려 한다.


제레미 앨런 화이트라는 배우를 아시는지.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2007년 그의 첫 데뷔작 <아쿠아리움>부터... 라고 시작하고 싶지만, 최근작 <더 베어>에서 처음 봤다. 짜리몽땅해보이는 몸에 뭔가 흐리멍텅한 눈빛... 내가 논하고자 하는건 <더 베어>에서의 연기력이 아니다. 티셔츠 핏이다. 근육으로 인해 티셔츠의 가슴과 팔의 섬유가 팽창된 티셔츠 핏이다. 

난 순진하게도 미처 그 부분을 파악하지 못한 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핏으로 여겼다. 당연한 얘기지만, 저런 범상치 않은 핏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이미 많았고, 어떤 브랜드의 티셔츠인지는 구글로 10초만에 알 수 있었다. 곧 가격이 12만원이란 것도 알았다. 아무 무늬 없는 잠옷 같이 생긴 흰색 티셔츠가 12만원? 그래도 단돈 12만원이면 저런 핏을 가질 수 있다니...! 나는 스크롤을 조금 더 내려 제레미 앨런 화이트의 사진을 뒤져보았다. 그의 CK 언더웨어 화보를 발견했을 때라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게 사람 몸이여 뭐여

그 뒤로, 내 삶에는 나름 파격적인 변화가 있었다. 첫 째는 '본격' 웨이트 트레이닝이다. 그 전에도 주짓수를 하긴 했지만 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딱히 없었다. 그래도 당연히 누워서 티비나 볼 때와는 다른 몸이 만들어지고는 있었고, 조~금은 재미가 나던 찰나였다. 옛날 어느 영화 홍보 인터뷰에서 봤었는데, 못생긴(정확히는 못생겼다고 포지션된) 배우가 잘생긴 배우에게, "나도 너처럼 생길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면, 피부관리를 정말 재밌게 했을거야"라고 한 게 기억이 났다. (정확한 코멘트는 아니다.) 이 얘기를 왜 꺼내냐면, 변화를 시도해보지 않으면 기미를 느낄 수 없고, 그 기미를 느끼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지만, 쨌든 변화의 기미를 느낄 수 있게 되면 그때 부턴 좀 재밌게 할 수 있다는 거다. 


제레미 앨런 화이트를 보고 나의 팔과 티셔츠 사이의 거리는 요원하지만, 예전보다는 가까워진 것 같아 재미가 붙는다. 조금만 더 하면 그래도 혹시... 물론 여전히 팔과 티셔츠의 관계는 데면데면하다. 

나나미카 룩북

또 하나는 스타일의 변화다. 나는 기존에 시티보이룩이라 부르는 스타일을 지향했다. 꼭 예뻐서만은 아니었다. 67kg에 허리가 28이었던 20대와 달리, 나는 30대에 접어들며 복부에 지방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앉을 때 허리라인에 올라타는 뱃살의 불쾌감이 싫었다. 이렇다보니 하드한 청바지 소재는 피하고, 밴딩이 된 바지만 찾았다. 그 미국 속담 같은 걸로 그런 말 있지 않나(이 또한 확실하지 않다). 식탁보를 바꾸면 커튼 바꾸고 집안 살림 다 바꾸게 된다고. 그렇게 나는 전체적으로 펑퍼짐한 룩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제레미 앨런 화이트의 청바지를 보고 마음이 좀 바뀌었다.* 대충 걸쳐입은 청바지에 코르테즈가 그렇게 괜찮아보일 수가 없었다. 코르테즈라니, 중고딩들 그것도 여자들이나 신던 신발 아니냐. 저런 걸 신으면 게이다.** 라고 생각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나는 코르테즈와 청바지를 샀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새로운 식탁보가 되었다.


그래서 결론은 뭐냐고? 요즘 옷 사느라 거지됐단 얘기다.


* 사실 이젠 저 룩이 개인적으론 지겹기도 하다.

** 표현이 좀 거칠지만 당시 힙합을 좋아하고 막돼먹은 생각을 했던 내 느낌을 그대로 살리고자 썼다. 그러니까 퍼프대디 커밍아웃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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