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rdinaryjo May 08. 2024

1인치의 장벽을 세우는 테레비들

체키럽나 커먼나 렛미버쓰나 온노 투스터 


유년 시절, 그러니까 내 90년대의 낙은 티비랑 라디오였다. 그 중에도 가요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할 거 없는 어린애가 다 그랬겠지만, 나도 라디오나 티비에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녹화해 주구장창 돌려 보는 걸 좋아했다. 춤도 곧장 따라하고 그랬는데, 사실 춤보다 따라부르는 게 쉬었으므로 주로 흥얼거리는 편이었다. 당시엔 자막이 없었으므로, 정확한 가사를 알기가 쉽지 않았다. 오피셜한 가사라는 것은 앨범을 사지 않는 한 알기 어려워서 나는 제멋대로 가사를 채웠다. 특히 영어 부분은 대충 "쎼릴라"라든지, "쌀릭말릭"이라든지하는 걸 넣어서 넘어갔다가, CD나 테잎을 사서 가사집을 보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글은 전혀 다른 단어를 넣어서 오독하는 경우도 잦았다. 근데 오독이라고 의미가 없던 건 아니다. 들리지 않던 가사를 '알려고' 헤매던 과정은 불편하지만 중요하다. 여러번 듣고 잘 들리지 않는 구간을 추론해 가사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또 부르는 가수의 감정에 더 집중하는 효과는 분명히 있었다.


머지 않아, 방송사들은 친절하게 가사를 띄워주었다. 근데 "따라부르기 편해졌다"란 생각보다, 거슬린다는 느낌이 더 머리에 번졌다. 시선은 가수에 머물지 못하고 가사가 있는 화면 귀퉁이로 떨어지고 오르기를 반복한다. 가사덕에 내용은 빠르게 '파악'될 수 있었지만, 감상의 맥은 툭툭 끊어졌다. "자막으로 가사 빨리 파악한 담에 가수에 집중하면 되지 않음?"도 맞는 소린데, 나는 아는 가산데도 자꾸 자막에 눈이 갔다. (그래서, <윤도현의 러브레터> 같은 곳에서 자막을 띄우지 않은 이유도 이런 이유라고 생각한다.) 당시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가 유난이라며 핀잔을 들었다. 곧 자막에 굴복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젠 드라마에도 자막이 나온다. 그게 편하고 대세란 말이 많다. 동의한다.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예전 음악방송을 볼 때의 안타까움과 나도 그렇게 대세에 적응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남는다. 여전히 유난이라는 얘기를 들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솔직히 이런 변화가 못마땅하다. 그저 '내용 파악'에만 몰두하는 것 같아 그렇다. 영화에서 그 사람이 그 대사를 읊을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떻게 장면이 구성되고 있는지 같은 그런 단편적인 것 말고도, 그 몰입의 흐름 자체를 나는 '1인치의 장벽'으로 단절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그러니까, 영화의 스토리 자체는 자막 덕에 이해가 더 잘 될 거다. 근데 감상으로 남는 적당한 이름을 찾지 못한 느낌들, 곧바로 이해되지 않고 곧바로 설명되지 않아.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굴리거나 글로 써서 헤집어야 보이는 그 '느낌들'은 점차 사라지는 걱정이 든다. 


티비에도 이젠 자막이 뜨는데, 작년에 책을 한권도 안 읽는 사람은 6명이라고 한다. 그런걸 보면 활자 자체가 문제는 아닌 듯하다. 다만, 텍스트 읽으며 행간과 의미에 대해 고심해보는 과정이 싫은 것에 가깝다. 노래 가사의 쎄릴라처럼 알 수 없는 문장을 추론하고 의미를 곱씹는 과정이 이제는 귀찮은 것이다. 근데 세 줄요약이라든지, 자막만 정리해놓은 짤이라든지는 또 엄청나게 소비되지 않는가. 그런걸 보면, 그저 활자는 내용을 빠르게 인지시켜주는 도구로 전락하는 중인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내 팔과 티셔츠 사이의 요원한 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