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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jo Aug 19. 2024

칠석의 나라, 능력의 쓸모를 찾는 일

쓸모를 위해 방황하는 현대인들

예전부터 이 만화책 정말 재밌다고 추천했지만, 아무도 안 보더라. 

그래도 이렇게 디즈니플러스에서 드라마화를 한 걸 보니,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구나 싶어서 반가우면서도, 유명해지니 왠지 섭섭한 기분은 무얼까. 개인적으로 드라마화는 재밌게 잘 된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외계인 설정과 캐릭터에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없으면 호불호가 있을 법한 작품이다. 



안 읽어도 되는 대략적인 줄거리


미나미마루는 취업반인 대학교 4학년이다. 미나미마루는 자신의 '쓰임새'에 관해 고민하지만, 정작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채 동아리활동으로 시간을 때우는 인물이다. 동아리의 이름은 '신기능 개척 연구회'. 이름부터 사짜 냄새나는 이 동아리에는 사실 '연구'가 없다. 미나미마루의 초능력을 신기해하는 너드들이 모인 집단에 불과하다. 그들이 경배해 마지않는 미나미마루의 초능력은 볼품 없으며 심지어는 볼썽사납기까지 하다. "츠와아아앗" 이라는 괴성을 지르면 유리컵에 작은 구멍이 뚫리는 게 전부다. 한 동아리 회원은 이렇게 말한다. "저걸 어따 써? 손으로 뚫는 게 더 빠르잖아" 


어느 날, 미나미마루는 일면식도 없던 마루카미 교수의 부름을 받는다. 느지막히 찾은 교수실엔 에미라는 강사와 두 명의 학생이 있다. 그곳에서 미나미마루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된다. 하나, 마루카미 교수는 자신의 먼 친척이다. 둘, 마루카미 교수는 자기 가문의 뿌리이자 역사적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마루카미 고을로 떠났다. 여기서부터 <칠석의 나라>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칠석의 나라>는 외계 미스테리 극의 포장을 하고 있지만, 결국은 미나미마루의 정체성 찾기 스토리다. 극중 내내 그는 미나미마루가 될 것인지, 남마루가 될 것인지(이름은 무엇보다 중요한 자신의 사회적 표식이다) / '가문'이라는 정체성을 따를 것인지, 스스로의 삶을 개척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초능력도, 학업도 변변치 않던 그는, 생각도 못한 마루카미 교수실에서 자신의 쓸모를 발견한다. 교수와 동향인 미나미마루는 교수를 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단 생각으로, '교수 찾기 일행'과 함께 마루카미 고을로 떠난다. 


미나미마루와 에미, 그리고 두 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교수 찾기 일행'은 마루카미 마을 사람들에게 교수의 행적을 묻는다. 외지인인 그들에게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그러던 도중, 어느 마을 사람이 미나미마루의 이름을 들자 반응은 180도 달라진다. 미나미마루를 "도련님"이라 부르며 '교수 찾기 일행'까지 극진히 모신다. 


고을은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어떤 미친놈 하나가 날뛰는 호러보다 미친 사회를 그리는 게 더 무서운 법이다. (미드소마라든지, 간니발이라든지가 그렇다.) 기묘하리만큼 뭉툭한 봉우리의 마루카미 산, 칠석 축제가 벌어지는 6월, 얼마 전 외지인에 대해 일어난 살인 사건, 미나미마루에 대한 과도한 대우, 그리고 '손이 닿는 자'와 '창을 여는 자' 대한 물음은 교수 찾기 일행을 불안하게 만든다. 

여기서, '손이 닿는 자'란, 기묘한 구체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구체란, 물체에 닿는 순간 닿는 면적 만큼을 소멸할 수 있다. (실제로 그것이 물체를 소멸시키는지, 아니면 창 밖으로 이동시키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구체는 '창 밖에서' 가져오며, '창을 여는 자'는 창 밖의 세상과 꿈에서 조우하고 두려움을 가진 인간을 말한다. (창 밖은 외계의 세계를 말한다,) 그 부족에서 미나미마루는 '손이 닿는 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두 가지의 사회 속에서 미나미마루는 주체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방법을 고민한다. 그러나, 여전히 미나미마루는 그 능력을 어디에 써야할지 알 수가 없다. 


아프니까 현대인이다
: 현대인에게 확고부동한 정체성이란 없다. 자아의 혼란은 필연적이다.

위에서 나는 <칠석의 나라>가 정체성 찾기 이야기라고 했다. 이걸 좀 더 풀어서 말하면 사회 속에 '갇혀 있는' 인간은 어떤 정체성을 선택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다. 여기서 '갇혀 있는 사람'의 예시로는 마루카미 주민들을 들 수 있겠다. 대부분의 마루카미 주민들, 그러니까 손이 닿을 수 없고 대부분 '창을 여는' 능력만 있는 마루카미 주민들은 자유를 포기한 세인(das man)들이다. 이장 같은 사람이 주민들의 대표성을 띄긴 하지만, 주민들은 사실 누가누구인지 잘 구별되지도 않고, 일부러 그렇게 연출한 듯 하다. 즉, 그들은 자신의 고유성이란 없고 그저 사회적으로 구성된 추상성에 매몰된 사람들이다. "왜 초능력을 지켜야 하느냐"는 물음에 마루카미마을 사람들은 "그냥 그랬으니까" 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신의 자유와 마주하는 것은 너무나 두려운 일이기에 자기기만 속에 빠져산다. 약 천년을 넘게 유지되어온 '칠석 축제', '손이 닿는 자에 대한 경외', '마을의 문화'라는 사회의 무게에 짓눌린 마루카미 주민들은, 그저 사회라는 틀에 갖혀 사고하지 못하는 인물, 그야말로 영화 속 엑스트라 같은 존재들이다. 


이들은 '바깥 세상-현대인'과 '마루카미 고을-근대인'이라는 관계로 더 확실히 대비된다. 근대인들은 마루카미 사람들처럼 확고부동한 정체성을 부여받았던 반면, 현대인들은 정체성 자체가 불확실하며 유동적이다. 그래서, 현대인인 미나미마루는 정해진 정체성에 휘둘리지 않으며 혼란해하는 것이다. 반대로, 요리유키는 영원한 정체성을 거부하고 바깥 세상에 나갔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더 큰 혼란에 빠져버린다. 


창을 여는 자
: 미래를 볼 수 있는 자는 두려워할 수 있는 자이다

부족 안에는 능력을 받아들이는 다양한 유형이 있다. 하가시마루 다카시는 능력을 사기를 치는데 쓰고, 마루카미 요리유키는 능력에 회의를 느낀다. 요리유키는 '손이 닿는 자'인 동시에 '창을 여는 자'인데, 아까 언급한 '창을 여는 자' 중 하나인 사치코와 함께 얘기하면 더 좋을 것 같다. 창을 여는 자는 미래를 인지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려지는데, 대체로 이런 서사에서 미래를 보는 일은 두려운 일로 묘사된다. 원래 그렇지 않은가. 미래를 생각하거나 예상해보지 않고 막 사는 놈은 삶의 두려움이 없는 법이다. 마치 내가 결혼 전에는 삶의 두려움이 없던 것처럼 말이다. 그니까 아무튼 간에, 미래를 볼 수 있는 자는 두려워할 수 있는 자이다. 


요리유키와 미나미마루의 차이
: 미나미마루의 진짜 능력은 손이 닿는 게 아니다

사치코와 요리유키는 모두 신(외계인)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지만 결국은 커다란 운명에 틀에 순응하는 자이다. 다만, 사치코는 벗어나려는 의지가 없는 반면, 요리유키는 신의 존재는 인정하되 그들과 조우하는 길을 스스로 개척하려 한다. 즉, 창을 여는 자로서 예고된 미래를 부정하고, 손이 닿는 능력을 활용하여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한다. 그래서 요리유키는 손이 닿는 능력을 추앙하는 마을 안에서 당주로 살았으나, 회의를 느끼고 바깥 세상으로 나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바깥 세상에서 능력의 의미를 찾으려 했지만, 그는 더 큰 회의와 절망에 빠져든다. 목적과 삶의 의미, 나아가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한 회의를 느낀 요리유키는 결국 파멸의 길에 이른다. 신화에서 예언을 받은 자는 예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만 결국 운명처럼 되는 것처럼 말이다. 즉, 방황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 요리유키는 커다란 운명, 부여된 정체성의 사슬을 풀지 못하고 신(외계인)에게 손을 뻗으며 소멸한다. 

반대로, 사치코는 순응하여 소멸되었어야 하는 인물이지만, 파멸에 이르기 직전 인간인 미나미마루의 손을 잡는다. 미나미마루 역시 능력 때문에 스스로를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었다. 사기를 치기도 했고, 사람을 죽일 뻔도 했고, 쓰레기 청소 업체를 만들까도 고민했었다. 요리유키와 미나미마루 모두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했지만, 요리유키는 능력을 사용하지 않을 방법은 생각하지 못했다. 이것이 둘의 가장 큰 차이다. 결국 미나미마루는 그곳이 동아리와 같은 곳임을 깨닫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의 쓸모를 생각하지만 사실은 쓸모가 없거나 사실은 세상에 해가 될 수도 있다. (마치 핵폭탄을 만드는 기술처럼) 그것을 꼭 이용해야할 것 같은 인간의 욕심, 그리고 그것에 경도되어가는 인간의 얼굴은 괴물과 닮아간다. 


어떻게든 이 능력을 사용하려고 했던 자, 그래서 거대한 운명이라는 큰 틀은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안에서 방황만 하다 파멸에 이른 요리유키처럼 되지 않고, 손이 닿는 능력과 운명 자체를 '무시해버리는' 것. 그것이 어쩌면 미나미마루의 가장 큰 능력이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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