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양자택일 퀴즈

<헌터x헌터>를 읽다가 든 잡 생각

by ordinary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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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x헌터>에서 곤 일행은 헌터 시험장을 찾는 여정에 나선다. 그 길목에서 '양자택일 퀴즈' 할매를 만나게 되는데 퀴즈란 대충 이런 식이다.

"엄마랑 애인이랑 둘 다 물에 빠졌다. 넌 누굴 구할래?"

정답이 없는 게 정답이었고, 침묵을 지킨 곤 일행은 해당 퀘스트를 통과하게 된다. 그런데 통과 이후에도 한참을 고민하던 곤은 이렇게 말한다.

"정답은 없는 퀴즈지만, 정말로 저런 상황이 오면 어떤 답을 골라야 하잖아. 난 잘 모르겠어"



설 연휴 다음 날, 일이란 게 될리 없는 날에 어떤 기사를 보았다. 대충 요약하자면, 취객 난동 때문에 자살자를 살리지 못할 뻔 한 경찰관의 얘기였다. 그런데 만약, 저기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의 시간을 앗아간 게 취객이 아니라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이면 어땠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디테일한 설정을 덧붙이자면,



A. 자살 신고자: 10년 간 몇 차례의 자살시도를 한 사람. 즉, 삶이 전혀 개선 되지 못해 깊은 좌절에 빠진 사람으로, 또 다시 자살이란 선택을 취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 "(트리아지 -적색)

B.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불구가 되어 직장을 잃고 우울한 삶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사람 (트리아지 -황색)



※ 당연히 이 정보들이 판단 주체인 구급대원에게 딱 명문화되어 놓여지진 않겠지만, 그리고 진짜 죽을 놈은 자살 시도를 여러번 하지 않아! 라고 할 수는 있지만...사고 실험이니까 이쯤에서 대충 넘어가도록 하자.



정답은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양자택일 퀴즈' 처럼 답이 안 나오는 문제다. 하지만, 결론은 모두 예측할 수 있다. 자살하려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칸트적 윤리관에 따라, '목숨이 제일로 중요해'란 통념을 가지고 있을 뿐더러, 트리아지(제한된 의료 자원으로 생명을 구하기 위해 환자의 중증도를 분류하는 시스템)에 따라 자살자 쪽으로 달려 가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공리주의적 관점에서는 최악의 결과가 도출된다. 죽고자 하는 (다시 자살 시도를 할) 인간은 살고, 생의 의지가 충만한 자를 죽고 싶은 삶으로 던지게 된다.



저 판단을 내려야하는 당사자인 구급대원은 어떨까. 그는 저 딜레마에서 분명히 내면의 상처를 입을 것이다. 내 생각엔 크게 두 가지 정도의 입장을 가질 것 같다.

1) "나는 매뉴얼대로 행동하여 생명을 살렸다" 라는 도덕적 알리바이를 세운다.

2) "에라이 죽을 놈 괜히 살렸다." 며 어쩔 수 없는 판단에 대해 자책한다



둘 중 어느 방향으로 가든 한 가지는 같다. 도덕적 부담은 현실에 닿는 마지막 개인인 구급대원이 진다. A가 수차례 자살 시도를 하도록 방치한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 그리고 두 명의 응급 환자를 동시에 감당할 수 없는 부족한 의료 인프라. 이 모든 거대한 시스템의 실패가 응급 현장이라는 점으로 흘러들어 한 명의 구급대원에게 '양자택일퀴즈' 로 던져진다.



"넌 누굴 구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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