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다>를 본 날의 생각들

자유로운 헛소리들

by ordinaryjo


그런 기분이 든 적 있다. 평생 뛰고 구르고 신나게 놀았는데, 알고보니 바닥이 얇은 유리바닥이었던 걸 깨달은 기분. 나는 허울들을 미워하다가 허덕이다가 행복하다가. 그렇게 허우적대면서 또 그것이 사라질까 두려워했다.

<어쩔 수가 없다>를 봤다.

재미없다는 주위의 말이 있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좋았다. 이러나저러나 영화는 현대인의 불안감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다만, 한국이란 배경에 덧칠된 미술과 상황들이 어색한 건 그야말로 어쩔 수가 없었다. 현대인의 불안감 자극이 블랙코메디란 장르의 블랙을 담당했다면, 어색한 부분이 코메디를 담당한 셈인데 코메디가 공포를 방해한다. 그게 방해하지 않고 웃겨야 블랙코메딘데...웃기지가 않잖아.

영화는 우리가 누리는 허울 좋은 평온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가를 말한다. 그리고 평온의 출처는 살인이라는 잔인함에서 온다니 얼마나 비루한가. 우리는 우리 안의 우리를 죽이고 타인의 죽이며 그 위태로운 평온에 안도한다. 포옹하며 얻는 슬픔이 없는 1분을 위해 살인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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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사적으로도 일적으로도 복잡하고 중요한 일들이 산재한다. 글 쓰는 일을 미루고, 보고픈 책들을 미뤄두고,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줄인다. 나중에. 이 일이 끝나면 나중에. 근데 그 나중에가 되면 나는 어떤 내가 되어 있을까. 그때도 나는 생각하고 글 쓰는 걸 즐거워하는 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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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테리어 때문에 아내와 함께 ‘일적으로’ 타인을 만나는 경우가 생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서로 친해지고 서로를 이해해야 좋은 공간 디자인이 나온다고 하자, 내가 “술이라도 한잔 해야겠네요”라는 너스레를 떨었다. 그때도 괜한 너스레라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집에와서는 나 답지 않은 말이라고 했다. 정말 그도 그럴것이 나는 술자리를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왜 그딴 말을 했을까...? <인간실격>에서 일부러 자빠진 주인공이 친구에게 “일부러 그랬지?”란 소리를 들은 기분이 이렇지 않았을까. 광대짓이 걸린 기분. 그런데 진짜 섬뜩한 기분은 내가 그걸 광대짓인지 모르고 했다면 그건 광대짓이 맞나? 그냥 광대의 짓이었던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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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라오의 개구리 뒷다리, 오리창자, 돼지 뇌는 인싸의 음식들이다. 날씨 얘기 빼고 먹는 것만큼 인간에게 공통적인 화젯거리가 또 없는데, 이런 특이한 먹거리 얘기는 무리에 참여하고 주목을 받기 더할나위 없는 주제이다. 너 거기 가봤어? 나 그거 먹어봤어. 진짜? 로 이어지는 사회적으로 너무나 매끈한 대화 맥락을 보라. 광대짓을 하려면 이런걸 쳐먹고 제대로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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