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그랬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를 읽고

by ordinary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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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양반 그 누구 알지? ‘그 사람도’ 그랬어”


논리가 안 먹히겠다 싶을 때, 가장 쓰기 쉬운 방법은 명언 갖다 붙이기다. 명언은 유희왕 카드 같은 거라서, 종류가 다양하고 등급이 높은 덱을 갖출 수록 적시적소에 꺼드럭대기 좋다. 단, 상황에 맞게 적절한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리는 건 또 다른 센스가 필요하다. 반드시 써먹을거야..! 란 마음을 잘 눌러담지 못하면, 내가 중학교 때 쓴 라임에 맞춰 쓴 랩같은 게 되는 거다.


하지만 이제 그럴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제미나이가 있으니까. 내가 키보드로 지려놓으면 적당한 모양으로 만들어주고, 필요하다면 명언을 덧붙여 예쁘게 포장까지 해준다. 정확한 문장, 정확한 출처. 오늘날 인용과 적용은 너무 간단하고 기억력은 잘 쳐주기 어려운 능력이 되었다.


소설의 내용은 괴테 전문가인 주인공이 티백에

붙은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가 진짜 괴테의 문장인지 추적하는 내용이다. 전문가인 자기가 봤을 때, 괴테가 말했음직한 말이지만 샅샅이 뒤져도 도통 원전의 문장을 찾을 수가 없다. (이후로는 스포) 결국 그는 추적 끝에 자신이 본 티백의 문장이 주어가 빠진 문장이었고, 또 주어가 빠지기 전에는 긴 문장을 축약한 버전이었고, 심지어 애초의 그 긴문장이라는 것도 괴테가 한 건지도 불분명하다는 걸 알게 된다.


결론적으로, 비슷한 내용이지만 누군가 옮기면서 다르게 쓴 셈이다. 닮았지만 옮겨지며 어떤 의미는 떨어져나갔고 또 어떤 의미는 붙었다. 이때 문장과 의미를 마음대로 바꿔버린 상자는 인간이다. 의미란 이렇게 변질되고 미끄러지는 과정에서 생성된다.(-라고 라깡이 말했다...)


글이든 영화든 뭐든간에, 우리는 대부분 원작자의 의도와 표현을 고대로 옮기려 한다. 그러나 사실 그건 이미 세상에 나와있는 유희왕 카드를 꺼내보이는 것과 같다. 어쩌면,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인간은 마음껏 오독해야하는 존재가 아닐지 모르겠다. 플레이 매트에서 그게 먹힐지 안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진짜 레어한 카드란 건 확신한다.


아래의 문장은 소설에서 가져온 것으로 여기까지 이어온 논리의 배반이다. 하지만 마무리멘트로 몰래 훔쳐 재구성할 능력이 없어 그대로 적는다.


“지금도 우리는 노아의 시대와 같은 무지개를 보고 있어. 그저 거기서 더 많은 이름을 읽어낼 수 있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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