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을 열게 하는 것들
요즘 내가 심각하게 빠져 있는 물건들이 있다.
첫째가 비 왁스 캔들(bee wax candle)과 소이 왁스 캔들(soy wax candle)이고, 둘째는 빈티지 브라스 캔들 홀더(vintage brass candleholder)이며, 셋째는 빈티지 실버 커틀러리(vintage silver cutlery)이다.
물론 위에 언급하지 않은 물건들 중에서도 나의 혼을 빼는 것들이 간혹 있지만, 유독 저 세 가지 물건들 앞에서 이성의 끈을 놓고 어느새 지갑을 열고 있는 나 자신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밤이면 밤마다 애정 하는 캔들 메이커들의 웹사이트에 들어가 새로운 제품이 나오지 않았는 지를 확인하고, 쉬는 날이면 남편을 졸라 안티크 샵들이 몰려있는 동네로 마실을 간다. 한국에서 면허만 땄지 운전 경험이 1도 없는 내가 최근에 들어 한국 운전면허를 영국 것으로 바꾸고 중고차까지 일사처리로 구매한 이유도 기동력 있게 내가 사랑하는 물건들을 더 많이 더 자주 찾아보기 위함이다. 물론 차 시동을 어떻게 거는지는 차차 배우기로......
기본적으로 빈티지 오브세션(vintage obsession)이 있는 나로서 모든 빈티지 제품들을 사랑하고 눈이 보이기만 하면 십중팔구로 갖고 싶은 마음이 동하지만, 전시할 공간이 있거나 사업장이 있는 사람이 아니니 작은 오브젝트들을 사서 모으는 것으로 물욕을 달랜다.
그중에서도 빈티지 브라스 캔들 홀더들은 크기별로 모양별로 꽤 다양해서 모으는 재미가 굉장히 크다. 특히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빈티지 오브젝트들 중 하나인, 앙증맞은 손잡이가 달린 빈티지 브라스 챔버 홀더(vintage brass chamber candleholder)들은 늘 실패 없이 내 지갑을 연다.
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오브젝트를 좋아한다. 그것이 오래된 물건이라면 특히나 더 그 오브젝트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언제 어디에서 만들어졌으며, 어떤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쓰였고, 어떻게 해서 이곳 빈티지 마켓 또는 안티크 샵에 오게 되었는 지를 늘 상인들에게 묻는다. 물론 빈티지 마켓에서 발견한 오브젝트들에 대한 히스토리를 듣기는 쉽지 않다. 상인들도 자신들이 파는 물건들의 대충의 연대만 알뿐 상세한 히스토리는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때면 늘 아쉬운 마음이 들고 그런 물건들을 사는 것에 주저하게 되는 걸 보면, 내가 수집하고자 하는 것이 단순한 오브젝트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영국으로 시집을 왔으니 자연스레 영국인 시어머님이 생겼다. 80대 초반이신 어머님은 전형적인 영국인이시다. 아버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시며 20대부터 6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시기까지 가정주부로서 사셨다. 주물 기술자이셨던 아버님은 실력이 좋고 성실하셔서 그 당시 평균 월급에 비해 월등히 높은 월급을 받으셨기 때문에, 어머님은 외동아들인 현재의 내 남편을 키우며 집안 꾸미기와 요리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며 지내셨다. 그런 어머님의 역사는 어머님 댁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침대 옆 작은 탁자 위에 놓인 보석함 조자도 양쪽으로 짝을 맞춰 두셨고 비록 가스로 작동이 되는 신식 파이어 플레이스(fire place)지만 그 앞에는 브라스로 만든 오래된 주전자와 액세서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런 어머님 댁에서 유난히 내 눈길을 끈 것이 바로 실버 커틀러리(silver cutlery)이다. 한국에서도 사실은 은수저를 사용했기 때문에 생각해보면 시댁에서 실버 커틀러리를 보는 것이 크게 새로울 것도 없는데, 왜 나는 그리도 그것들이 예뻐 보이고 갖고 싶었을까. 앙증맞은 크기로 식탁 위에 두는 실버 후추통과 소금통은 또 왜 그리 깜찍하고, 오래된 리큐어 글라스들(liqueur glasses)을 올려놓은 실버 트레이(silver tray)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우아해 보였다.
어머님의 오래된 실버 주방용품에 내 마음을 빼앗긴 이유는 아마도, 그것들이 그냥 관상용으로 놓여 있었던 것이 아니라 처음 만들어질 때 부여된 용도에 따라 현재에도 잘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머님의 실버 키친웨어(silver kitchenwear)는 단순한 생활용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잘 만들어졌다. 60년이 지난 지금에도 쓰임에 문제가 없고 여전히 아름다운 모양새를 가지고 있어 쓰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소중히 다루게 된다. 내가 빈티지 실버 커틀러리를 좋아하고 수집하는 이유도 그런 것일 테다. 사용하는 사람들이 시간을 두고 소중히 다루며 아끼는 물건들은 그 안에 많은 이야기를 담게 되고 소유자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고 나는 믿는다.
이렇게 빈티지 오브젝트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나도 딱 하나 새것을 좋아하는 게 있다. 바로 캔들이다. 모양과 크기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초들을 사랑 하지만 초의 원료와 만들어지는 장소를 세심하게 따지는 편이다. 다행히도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아기자기한 인디펜던트 샵들이 있고 그곳에서 질 좋은 핸드메이드 소이 왁스 캔들이나 로컬 비 왁스를 이용한 캔들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전에는 누구나 다 아는 브랜드의 제품들을 선호했다. 인기가 많으니 제품의 질은 당연히 좋을 것이라 생각했고 원료나 생산 과정에 대해서는 따져보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다. 사실 그때는 지금처럼 개개인이 소소하게 꾸려가는 스튜디오식 가게들이나 작은 상점들이 많지 않았기도 했다.
빈티지 캔들 홀더에 예쁘장하게 올려진 색색의 캔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소꿉장난을 하는 것처럼 신이 난다. 요리를 한 후 음식 냄새를 없애기 위해 시트러스 향이 강한 캔들을 켜는 것이 어느새 습관이 되어 버렸고, 친구들을 초대해 저녁을 먹을 때면 그동안 아껴왔던 빈티지 촛대들을 마음껏 식탁 가득 얹어두고 어둑어둑한 다이닝룸에서 밤이 늦도록 와인을 마신다. 혼자 앉아 글을 쓸 때나 긴 하루를 끝내고 따뜻한 물에 몸을 씻을 때에도 나의 무드에 따라 선호하는 향의 초를 켠다.
요즘 내가 빠져 있는 것들이 언제까지 나에게 기쁨을 줄런지는 모르지만 그것들을 향한 나의 애정이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좋아하는 것들이 있는 인생을 사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긍정이고 행복이다. 소소하게 좋아하는 물건들을 모으고 심사숙고해 좋아하는 향의 캔들을 고르는 나의 작은 일상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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