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여행자들의 모임, 꿈 여행학교
새벽기상 모임 아름다운 새벽을 5년째 이어오고 있다.
평일에는 새벽 기상 후 새벽 안부를 나누고
주말에는 주간 성찰을 나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의 새벽이 기록된 아새노트지만
아름다운 새벽을 함께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끼리는
절로 마음의 빗장을 열고 노트도 열게 된다.
차분하게 새벽을 이어가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타인의 시선에 대한 경계와
평가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라앉기 때문인데,
의무가 아닌 자율의 의지로 노트를 열기에
그 일에 대한 감정의 선택도 오롯이 내 것이 된다.
노트를 열지 않더라도
주간 성찰 나눔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꼬리 물기 형식으로
주간 성찰 후 한 줄씩 문장을 나누는 일이다.
지난주 주간 성찰 후 나눈 한 문장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이 공유되었다.
내 마음을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
불편한 말을 해냈다. 후련하다.
이 문장이 크게 나에게 다가왔다.
이제는 말해야 할 때가 되었는데
말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
말하기 전의 두려움
말하고 난 이후에도 내 안에서 이어지던 갑론을박
그럼에도 후련했던 감정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마운 새벽 동무의 한 문장이
나의 지난 경험은 물론
현재 진행형인 경험과 이어졌다.
마침, 오늘 새벽에 읽은
마흔에 읽는 니체 이야기 안에서도
그녀의 나눠준 한 문장이 이어졌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어떻게 인생을 여행할 것인가?
너는 네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너는 너의 주인이며 동시에
네 자신의 미덕의 주인이 되어야만 했다.
과거에는 미덕이 너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그 미덕은 다른 도구들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너의 도구여야 한다.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중에서>
이 문장을 읽고 또 읽으며 깊은 위안을 얻었다.
어떻게 나만 생각해.
그래도 각자 애쓰고 있는 상황이잖아.
조금 더 참고 기다려 볼 수도 있긴 하잖아.
시시때때로 올라오는 이런 감정의 다독임을 받는다.
위의 명징한 문장이 담긴 니체의 책은
무려 1878년에 쓰였다.
개인성보다는 집단,
개인의 자유 보다 미덕이 훨씬 중요시되었던 그 시절에도
인간은 현재의 나처럼 갈등을 해왔고
그에 대한 철학자의 해법은 바로
그 미덕의 주인도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에서
진정한 후련함을 느낀다.
이제 자유정신은
어떤 '너는 해야 한다'에
자신이 복종해 왔는지,
그리고 이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비로소 무엇을 해도 좋은지를 알고 있다.
그러니 그만 이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니 그만
이제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마지막 문장은
불편한 말을 꺼낸 후
나 혼자 갑론을박하던 시간의 시원한 종결을 맞게 해 준다.
이래서!
책을 읽는 거겠지...!
연약하고 미련한 두꺼비가 되어
뜨거운 냄비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던 모습처럼
더는 익숙하고 편안한 것들에 머물러 있기보다
잠시 불편한 말을 하며 스스로 냄비 밖으로
폴짝 뛰어나온 어제의 나를
오늘의 나와 미래의 내가 칭찬해 주겠지!
그 믿음과 함께
책에 적힌 다음의 질문에
성실히 답하는 한 주를 보내고 싶다.
'과연 무엇이 나를 살게 하는가?'
'어떻게 해야 불만족스러운 삶과 이별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내 삶의 기준을 찾을 수 있는가?'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들의 행복도 그러하다.
< 꿈 여행 14주 차 함께 듣고 싶은 노래>
https://youtu.be/--4nnJf5vQQ?si=zVGt4Vqerl-DvPJ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