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친구들은 벌써 밥상 졸업했어’
나만 밥상 차려, 언제까지 밥상을 차려야 하니. 외출 갔다 돌아온 엄마가 한껏 투덜거리며 불편한 밥상을 차린다. ‘아니, 엄마 나 진짜 안 먹는다니깐’. ‘안 차려주면 먹지를 않지!’ 엄마는 안 먹는다는 내 말을 가볍게 필터링하고 수저를 놓는다.
여기까지 들으면 이 나이 먹어서 엄마가 밥상 차려줄 때까지 꼼짝 안 하는 쓰레기 같은 인간 같은데. 나 진짜 아니다. 엄마는 외출했고, 그저 정말 밥맛이 없어서 안 먹었을 뿐이다. 엄마가 돌아와서도 난 밥을 먹을 생각이 없었다.
근데 굳이 엄마는 밥상을 차린다. 다 차려놓은 밥상을 안 먹는다 말하면 그렇게 안 먹고 어떻게 살 거냐고 세상 무너질 듯 한숨을 쉰다. 그럼 또 어쩔 수 없이 안 넘어가는데 수저를 들고 꾸역꾸역 먹는다. 그럼 엄마가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쉰다. 차려줘야 먹는다고. 와 나 환장하겠다. 어떻게 해도 욕먹는 구조다.
결국 엄마는 외출 시에도 내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혼자서 밥을 먹어야 마음이 편한 거다. 마치 외근 시에도 본인의 업무가 원활히 돌아가길 원하는 직장인처럼. 업무 완벽주의라고 봐야 하나.
헌데 이게 좀 심한 게, ‘나 결혼해서도 엄마 옆집에 살 거야’란 농담에 ‘됐어, 내가 이 나이에 사위 밥상까지 차려야 하니, 너 이사 오면 나 이민 갈 거야’ 엄마가 질색을 한다. 아니 난 그냥 애정을 표현한 거뿐인데 거기서 있지도 않은 사위 밥상 얘기가 왜 나와.
왜 사위 밥상 차려 줄 걱정부터 해. 사위가 차릴 수도 있는 거잖아. 아니 내가 하면 되지. 아오 그냥 시켜먹어. 왜 밥상 생각부터 해. 아 하긴 우리 엄마는 며느리 밥상 차려 줄 걱정도 하는 사람이니깐. 도대체 있지도 않은 며느리, 사위 밥상 걱정을 왜 하는지, 엄마가 밥상 강박증이 있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이 됐다.
그런데 작년에 엄마 아빠가 열흘 정도 여행을 갔다. 근데 난 왜 바쁜 걸까. 분명 집에 혼자 있는데, 뭘 해 먹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바빴다.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냉장고 정리하고 굳이 먼지가 없는데도 청소기를 돌리고 나름 바빴다.
나름 5일을 정신없이 보내고, 지쳐서 침대에 누웠는데 그제야 생각이 번쩍든다. 도대체 왜 난 바쁘게 사는 걸까. 굳이 일을 만들어서 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혼자 살았어도 이렇게 분주히 바빴을까. 아니다. 오히려 늘어져서 안 했을 거다. 근데 그때는 묘한 책임감이 있었다. 엄마가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도 집이 항상 이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과 책임감 때문에 하루 루틴처럼 깨끗한 집을 치우고 또 치웠다.
엄마에게 밥상도 이런 의미였을까, 내가 방송 시간에 맞춰 대본을 쓰듯, 무조건 때 되면 밥상이 나가야,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루를 퇴근할 수 있는, 직업인의 소명의식이었을 수도 있겠다.
근데 직장인도 정년 퇴임을 하고, 휴가를 가 듯, 엄마도 이제 밥상에서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성실한 노동자로 살 텐가, 엄마, 엄마 딸 서른넷이야.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