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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법대로 한다 Feb 21. 2020

팔십에도 카드 긁는 여자 되는 법

'특기는 카드 긁기'     

'취미는 쇼핑 하기'     

'이상형은 카드 주는 남자요'     

'꿈은 백화점 VVIP 되는 거요'    


추근 되던 상사의 얼굴이 터질 것 같이 달아올랐다. 쉴 새 없이 나불대던 입이 이제야 조용해졌다. 꾸준히 지치지도 않고 들러붙던 상사를 자본주의로 물리쳤다. 이후 후일담을 들어보니 날 보고 된장녀라고 그렇게 욕하고 다닌다고... 글쎄다, 된장녀라기보단 가치관이 확실한 30대라고 정의하는 것이 맞을 듯싶다.     


살아보니 돈 쓰는 거만큼 세상에 재미있는 일은 없더라. 물론 이 재미에도 경중이 있는데, 내가 했던 가장 짜릿했던 소비는 10년 전이다. 그 당시 엄마는 언제 샀는지도 기억이 안나는 다 찢어진 닥스 지갑을 들고 다녔다. 매번 모임 갈 때마다 엄마는 찢어진 부분을 들키지 않으려고 가리고 다녔는데, 참 그게 좀 그랬다. 그래서 엄마 지갑 사주려고 주말 알바를 시작했다. 목표는 명품 지갑. 그때까지 돈을 벌어본 적이 없으니 한두 달만 일하면 엄마 지갑을 사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당시 시급이 3500원, 한 달 알바비로 35만 원이 들어왔다. 루이뷔통 지갑은 80만 원.  알바비에서 교통비와 용돈도 충당하고 있어서 내 손에 남는 건 고작 10만 원 안팎이었다. 아... 난 계산이 안 되는 전형적인 문과 학생이었다. 9개월을 일하고 나서야 난 루비뷔통 매장에 입성해 드디어 지갑을 샀다.     


내 돈으로 산 첫 명품. 시급 3500원 받는 대학생이 80만 원짜리 지갑을 체크카드로 계산하다니! 나의 노동은 결코 헛되지 않았어! 명품을 얻었으니깐...! 벅찬 마음에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내가 한 노동으로 얻은 첫 수확물. 나 여태까지 삽질한 거 아니구나란 안도감. 그날의 명품은 내 노동의 가치를 확인시켜주고, 삶의 방향성을 확립시켜줬다.


난 번아웃이 왔다며 고민 상담하는 동생들에게 항상 명품을 사라고 말해준다. 돈만 벌지 말고 노동의 가치를, 자본주의의 힘을 확인받고 오면 열심히 일하게 될 거라고.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있으니, 

실제로 참여했던 한 기업 면접에서 업무로 스트레스 받을 때 어떻게 푸냐는 질문을 받았다.     


‘명품백을 할부로 사요. 저는 물건을 얻어 행복하고, 할부를 그었기에 회사를 열심히 다닐 수 있게 돼요’     


면접관은 어이없다면서도 신선하단 반응이었다. 실제로 나도 회사도 윈윈 아닌가 싶다. 내 인생 장기 목표는 명품백을 원동력으로 커리어를 쑥쑥 키워 팔십에도 카드 긁는 여자가 되는 거다. 팔십에 자식 카드 안 쓰고 본인 카드를 당당히 긁는 여자! 얼마나 멋진가! 그 뒤엔 어떤 대단한 커리어가 숨어 있을지 감도 안 온다.     


이 시대 나와 같이 일하는 그녀들이 명품 사는데 손을 벌벌 안 떨었으면 좋겠다. 

명품은 내 노동의 참된 가치를 확인받는 길이다. 업무 성과표 정도로 생각하자. 

올해 명품 지갑밖에 못 샀다면, 내년엔 명품백을 살 수 있게 더 열심히 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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