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못 쉬어요, 대신 평일에 이틀씩 한 달에 8번 쉬는데 그중 한 번은 개인 연차로 소진돼요. 설이나 추석 때는 쉬어요. 그런데 설날 이틀 쉬었으면 그 달 휴무에서 2회 소진돼요. 현충일 등 빨간 날은 공무원한테만 해당되는 거라 안 쉬어요.
내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이 한국말인가? 왜 휴무가 개인 연차로 소진되는가? 그럼 연차가 없단 말이잖아? 설날에 쉬긴 쉬나, 추후 그건 휴무로 소진된다? 안 쉬는 거잖아? 빨간 날은 왜 안 쉬고? 진짜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고 앉아있다. 입사 첫날 나랑 이제 대학 갓 졸업한 신입 사원을 끌고 가서 인사과 과장이 자꾸 이상한 말을 한다.
자, 이젠 자기소개서를 쓰세요. 자기소개서를 윗분들이 보고 상담 후에 부서를 배정해줄 거예요. 11시까지 쓰세요. 그대로 우릴 방치하고 인사과 과장에는 방으로 쏙 사라졌다. 자기소개서를 이미 줬는데 뭘 또 달래, 어이가 없었지만 자필로 한 땀 한 땀 썼다. 다 쓰고 옆에 신입사원을 보니 좀 더 시간이 걸릴 거 같다. 그래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이사가 와서 한 번 인사하고. 그러곤 한참 뒤에 이사 방으로 상담을 하러 인사과 과장이랑 들어갔는데, 다짜고짜 이사가 소리를 지른다.
‘우리 회사 다닐 생각 있어요?’
‘김 과장 교육 안 시켜!’
과장이 열중쉬어를 하고 혼난다. 시간이 남아서 핸드폰 한 게 죄인가, 왜? 아니 그렇다고 입사 첫날 직원들 다 들리게 고함지르면서 혼내는 게 정상인가에 대한 생각이 스친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싸울 의지도 안 생긴다.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점심을 먹는데 인사과 과장이 어지간히 열 받았나 보다.
‘첫날인데 긴장 안돼요?’
이 멘트 어딘가 익숙한데... 아 고등학교 때 일진놀이하던 선배가 자주 쓰던 말이다. ‘긴장해라’ 꼴값이다. 고등학생이 해도 꼴값, 성인이 하면 더 꼴값이다. 이런 사람들이 대단히 착각하는 게 고등학생이 하면 유치하고 자기가 하면 멋있는 줄 안 다는 거다. 수준 떨어져서 진짜. 나름 회신의 한방을 던졌는데 내가 쫄지 않자, 굴하지 않고 꼰대질을 시작한다. 기사를 잘 쓰려면 필사를 해야 돼요. 필사 좀 해요. 아 이제 한계다.
‘글 써 봤어요?’
‘난 10년 글로 밥 먹고 살았어요’
평생 글이라곤 써 본 적도 없는 인사과 과장이 작가 앞에서 글을 운운한다. 심지어 난 경력직으로 뽑혀서 왔는데. 인사과 과장 얼굴이 터질 거 같다. 아, 진짜 같잖다.
‘우리 회사랑 안 맞을 수도 있겠네요’
‘네. 안 맞아요’
그리고 짐 싸들고 나왔다. 내 생애 첫 사대보험 되는 직장을 입사 첫날 퇴사했다. 하루 출근 체험에선 느낀 건, 일반 회사엔 더 꼰대가 많다는 거. 아니 도대체 왜 신입사원은 항상 긴장하고 쫄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겁먹어야 하는 건가? 구십 도로 인사하고? 그럼 고등학생애들 일진 놀이하는 거랑 다를게 뭐가 있나 싶다.
뭐 대기업이면 연봉 많이 주니깐 적당히 맞춰주겠다만, 내 경험상 이런 꼰대질은 소규모일수록 더 했다. 공중파 3사 본사 피디들은 대부분 괜찮았는데, 꼭 아주 작은 케이블 피디일수록 대접받으려고 그랬다. 술 따라 보라 그러고. 본인의 열등감을 감추려고. 근데 이런 찌질이들이 센척할수록 더 못나 보인다.
아 진짜 못나게 늙지 말아야지.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꼰대질 한다고 했다면 일은 못하는데 센 척만 겁나 한다는 얘기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여 우리 제발 함께 멋있게 늙자.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