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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법대로 한다 May 17. 2020

56세 엄마 넷, 33세 딸 싸이콘서트 가다

‘싸이 콘서트 예매한대, 가자’    


방탄소년단 콘서트를 가는 소녀처럼, 엄마의 양볼이 한껏 들떴다. 얼마 전 싸이 콘서트 가고 싶다던 엄마 말에 별생각 없이 대답했는데, 엄마는 진심이었구나. 무심한 딸은 그제야 깨닫는다. 엄마는 내가 대답한 날부터 매일매일 싸이 콘서트를 검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아 티켓팅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대망의 티켓팅 날. 지오디 재결합 콘서트 이후 티켓팅은 처음이니 5년 만의 도전이었다. 거기다 옆에는 나보다 더 긴장한 엄마가 서 있다. 아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막중한 책임감에 새로고침을 수십 번 한끝에 예매 성공. 할렐루야


그날부터 엄마는 난리가 났다. 드레스코드를 준비하고, 싸이 콘서트 후기를 꼼꼼히 읽어보고 엄마 친구들한테 자랑 전화도 돌렸다. 그런데 엄마가 너무 신나게 자랑한 탓일까. 엄마 친구들이 하나둘씩 전화가 온다. 자기도 끼어주면 안 되냐고.


오 마이 갓. 그럼 엄마 친구랑 갔다 오라고 했더니 그건 절대 안 된단다. 60 다 된 아줌마들끼리 싸이 콘서트 가는 건 엄두가 안 난다며, 꼭 내가 끼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내 손을 꼭 잡고 구세주처럼 날 바라보는 이모들. 아, 스무 살 돼서 클럽 처음 가는 여대생처럼 한껏 들뜬 얼굴이다. 그래 나 처음 클럽 간 날도 엄청 어색했는데, 엄마들은 오죽하겠어란 생각이 든다. 엄마들에게 싸이 콘서트는 클럽보다 더한 난제였을 거다.


그래 까짓 거 효도 한 번 제대로 하자. 그렇게 난 56세 어머니 넷을 모신, 싸이 콘서트 가이드가 됐다. 다행히 취소표가 나와 티켓은 확보했고, 올나잇 콘서트이기 때문에 어머니들 체력이 관건. 콘서트 당일 당을 채워 줄 홍삼 캔디와 젤리, 초콜릿, 그리고 비타민 워터까지 골고루 챙겼다.


그렇게 어머니 넷을 모시고 싸이 올나잇 콘서트장에 도착. 주변을 둘러보니 10대에서 40대가 대부분, 혹여나 엄마들이 주눅 들지 않을까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웬걸 우리 엄마들은 역시나 용감했다. 콘서트 입장 전 싸이 인형 앞에서 사진 찍고, 어색함 따위 1도 없다.


드디어 콘서트장 입장. 나는 그날 초긴장 상태였다. 올나잇이라 엄마들 체력 떨어져서 쓰러지면 큰일이다. 무조건 난 버텨야 한다. 엄마들을 지켜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와 함께 콘서트 오프닝 시작.


우리의 연예인 싸이가 등장하자마자 엄마들이 미친 듯이 뛴다. 아니 그 얌전하던 이모들이 20대 여대생보다 더한 몸짓으로 온몸의 열정을 가득 담아 흔들어댄다. 그리고 처음 봤다 우리 엄마가 그렇게 편히 즐기는 모습을. 남 눈치 1도 안 보고 정말 오롯이 콘서트에 열중해 미친 듯이 뛴다. 아, 우리 엄마도 잘 노는구나, 아니 놀 기회가 없었구나. 저 넘쳐나는 흥을 어떻게 참았을까. 마음 한쪽이 시큰해진다. 그날 콘서트에서 이방인은 나였다. 처음 보는 엄마들의 흥 오른 모습에 너무나 미안해서, 엄마도 잘 논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내가 너무나 미련해서, 속이 참 갑갑했다.


엄마들은 정말 다섯 시간 내내 한시도 앉지 않고 계속 뛰었다. 이러다 쓰러질까 싶어 앉으라는 내 말에, 앉는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 끝끝내 서서 콘서트를 정말 100% 즐겼다. 그렇게 엄마들은 올나잇 콘서트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새벽 5시에 콘서트 장을 나섰다.


보통 밤새 술 먹고 들어가는 시간인데, 이 시간을 엄마와 함께 걷게 되다니, 시트콤 같은 이 상황에 슬슬 웃음이 새어 나오는데, 엄마가 찬물을 확 끼얹는다.


‘언제 이런 거 또 오겠어, 체력이 안 돼서 이제 못 와’


즐거운 일을 하면 또 할 생각을 해야지. 엄마들은 어느 순간부터 항상 끝을 먼저 생각한다. 갱년기라 그런가... 물기 먹은 휴지처럼 마음이 눅눅해진다. 잘 보고 나왔는데 괜스레 우울하다. 괜찮다, 내년에도 엄마들 모시고 또 오면 되지. 나 때문에 잃어버린 엄마의 젊음을 이제부터 내가 한 조각씩 찾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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