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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법대로 한다 Dec 04. 2020

내가 차인 날 엄마는 굴국밥을 사줬다

‘먹어, 굶어 죽을 거야!’    

  

엄마는 기어코 날 식당 의자에 앉혔다. 방 안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시련의 아픔을 꾹꾹 눌러 담아 소리 없이 청승맞게 우는 날, 끄집어낸 거다. 이삼일쯤은 시련의 슬픔에 젖어 맘껏 울고 그를 떠나보내고 싶은데 성격 급한 우리 엄마 내게 그 정도 여유도 주지 않았다.


내 브런치에 가장 많이 나오는 참 많이 좋아하던 그놈에게 뻥 차인 그날이었다. 내게 첫사랑은 아직도 그놈이다. 그놈만큼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없다. 그랬기에 그와의 이별이 더욱더 서러웠다. 그렇게 사랑했던 그였기에 그의 마지막 이별 멘트는 더 충격.


‘우리 사실 많이 안 맞잖아’


아... 난 여태까지 우리가 굉장히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아니었구나. 이별통보보다 그간의 시간이 우리의 사랑이 부정당한 거 같아서 더 서러웠다. 그렇게 차이고 들어와 엉엉 울고, 다음날 더 이상 울리지 않는 카톡에 또 한 번, 더 이상 카톡을 보낼 수 없단 사실에 안타까워 또 한 번, 그와 함께 만든 펜을 보고 또 한 번. 아주 숨만 쉬면 울 일 천지였다.


그래도 난 서른 넘어 집에 얹혀사는 못난 딸. 집에 차인 사실까지 들키면 너무 쪽팔린다. 내 동생은 평생 놀릴 거다. 그래서 못난 자존심에 나름 안 들키게 운다고 침대 이불을 목 끝까지 밀어 넣고 울분을 안으로 삼키며 울었다. 나름 기술적으로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30평대 아파트에서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지나고 생각해보건대 우리 엄마는 진즉 알았을 거다. 남자한테 차였다고 우는 서른 살 딸내미의 울음소리를 들은 엄마 마음은 어땠을까. 마음이 찢어졌을까? 가련해서. 노놉. 우리 엄만 복창이 터졌을 거다. 속으로 내팔자야도 열댓 번 외쳤겠지.


그렇게 문밖에서 참아주다 인내심에 한계에 달았는지 날 이끌고 나왔다. 굴국밥집으로. 말간 굴국밥이 앞에 놓여진다. 아 얼마 만에 밥이지 50시간 됐나. 별생각 없는데. 그래도 습관적으로 수저를 밀어 넣는다. 뜨끈한 국물이 목을 넘어 가슴속 울분을 지져준다. 좋다 생각보다 괜찮다. 이별 세리머니로 한 열흘은 굶으면서 비련의 여인이 되겠다는 각오는 어디 가고, 어느새 미친 듯이 수저질을 하고 있다. 


뜨거운 국물이 넘어갈 때마다 그놈이 비수를 꽂던 말들이 하나씩 녹아내려간다. 그래 지우자. 지우자, 부정하자. 한 스푼 한 스푼 내 슬픔을 지졌다. 엄마는 그런 날 한심한 얼굴로 보더니 겨우 수저를 뜬다. 


‘망할 년. 내가 언제까지 저거 뒤치다꺼리해야 돼?’ 엄마가 눈으로 욕한다. 그날 우리 엄만 복창이 한 열댓 번 터졌을 거다. 서른 넘은 딸 연애사도 케어해 줘야 한다니. 우리 엄마도 참... 미안 엄마. 그래도 그날 엄마는 묻지 않았다. 내가 8살 때처럼. 내가 좋아하던 남자애가 다른 애를 좋아한단 말에 집에 와서 엉엉 울던 내게 엄마는 바둑알 초콜릿을 쥐어줬다. 인생 첫 시련을 위로하며. 이젠 굴국밥.


엄마 미안 빨리 결혼할게. 결혼하면 굴국밥 안 먹어도 되겠지...? 그래야 해. 그래야 한다. 

일단 결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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