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에서 김장을 해 주시는데 얼마를 드려야 할까요?’
‘20만 원이면 충분해요’
이맘때만 되면 꼭 벌어지는 김장 논란. 시댁에서 김장을 하는데 얼마를 드려야 하냐는 글에 20만 원, 30만 원이란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불현듯 한 달 전에 뼈 빠지게 엄마와 삼일 내내 김장을 한 대가가 이것밖에 안되나 싶어 화딱지가 난다. 분명 다들 김장을 안 해 본 게 틀림없다.
엄마는 김치 예찬가다. 매 년 올해는 김장을 안 하고 사 먹는다 하지만, 막상 겨울이 오면 ‘찌개에 넣을 김장만 하자’며 스멀스멀 김장 준비를 한다. 매년 똑같은 다짐을 봐 왔던 터라 이젠 난 거의 포기 상태. 그리고 솔직히 엄마 김장이 맛있긴 맛있다.
엄마가 김장 결심을 한 순간부터, 김장 한 달 프로젝트에 들어간다. 일단 절인 배추 확보가 우선, 일 년 먹을 김장이니 신중해야 한다. 지인의 지인을 통해 강원도 산지에서 바로 올려 보내는 절인 배추를 확보하고, 날짜를 픽한다. 그럼 그때부터 본격적인 김장 준비 시작.
절인 배추 배송되는 날에 맞춰 모든 재료를 세팅해야 한다. 생새우를 주문해놓고 새우젓, 무, 소금, 각종 액젓, 양파, 미나리, 과일, 고춧가루, 소금, 굴, 생강, 육수에 넣을 북어와 다시마, 마늘까지 준비해야 한다. 이 모든 재료가 한 곳에 예쁘게 있으면 좋으련만 꼭 한 두 가지는 마트에 없어서, 장만 두세 군데를 돌고, 수산시장을 한 번 갔다 와야 재료 세팅이 끝난다. 일상 집안일은 집안일대로 하면서 추운 날씨에 장만 이삼일 보고 나면 이미 지친다.
하지만 이제 예선 시작. 우선 마늘을 깐다. 대야 속에 가득 담긴 마늘을 엄마와 둘이 앉아 세네 시간에 걸쳐 다 까면 목과 어깨가 석고처럼 굳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처럼 보행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이제 절인 배추가 오기 전 재료 세팅 시작. 엄마는 북어와 각종 재료를 넣어 김장에 넣을 육수를 끓이고, 풀을 쑤기 시작한다. 난 옆에서 마늘을 믹서기에 갈고 굴을 씻는다. 굴이 손질돼서 오긴 하지만 한 번 더 손질이 필요하긴 하다. 찬물에 한 땀 한 땀 굴 끝에 붙어있는 껍질을 제거해준다. 점점 시려오는 오는 손에 굴을 뜨거운 물에 씻을까 고민하다 엄마에게 등짝 맞을까 봐 꾹 참는다. 굴을 다 씻으면 손에 감각이 없어진다. 젠장.
엄마는 김장에 들어갈 각종 채소를 썰기 시작하고, 난 옆에서 엄마가 정리해주는 김장통을 설거지한다. 새로 김장을 해서 넣으려면 기존의 김장통을 비워내야 한다. 남은 김장을 버리고 설거지를 한다. 김장통이 깊어서 헹구는데 옷에 물이 다 튄다. 설거지 후 부피가 커서 그대로 엎어둘 수도 없다. 키친타월로 일일이 물기를 제거해 한쪽에 가지런히 정리를 한다. 그리고 여기까지 과정 중에 나온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다.
드디어 절인 배추가 왔다. 절인 배추를 상자에서 꺼내 바구니에 널어놓고 물기를 뺀다. 그 사이 재빨리 무를 미친 듯이 강판에 갈아준다. 손목이 나갈 거 같다. 아빠까지 총동원돼서 작업을 마친다.
이후 각종 양념과 채소를 넣어 속을 버무린다. 양이 많아서 버무리다가 대야에 빠질거 같다. 균형 감각이 필수다. 위태위태하게 속을 다 버무리면 이제 배추를 꺼내 반쪽씩 잘라 속을 켜켜이 메꿔준다. 엄마 아빠가 김장을 김치통에 넣으면 난 김치통에 묻은 양념을 깨끗하게 닦아 한쪽에 김치통을 쌓아둔다. 여기에 중간중간 나오는 설거지는 기본이다. 특히 김장 설거지는 해산물과 젓갈 담은 그릇이 많아 자칫하면 싱크대 전체에 비린내가 베기에 여러 번 헹궈야 한다.
김장을 반쯤 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럴 땐 비상약이 있다. 바로 박카스와 믹스커피로 억지로 에너지를 끌어올려 남은 김장을 다 마치고 이제 피날레. 양념이 가득 묻은 김장 대야와 사방으로 침투한 고춧가루를 치워야 한다. 바닥과 각종 그릇에 묻은 고춧가루를 물티슈로 한 올 한 올 닦는다. 100매가 들어있는 한 팩을 청소에만 다 쓴다. 여기까지 하고 나면 샤워를 하고 나와서 다시 청소기를 돌리고 스팀 청소기까지 하면 김장의 여정이 끝난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가 생각나 현기증이 난다. 이런 고생을 하는데 고작 20만 원이라니, 정말 김장을 안 해 본 게 틀림없다. 50포기 기준 재료값만 해도 100만 원 가까이 든다. 그리고 보통 주부들은 이때 1년 먹을 고춧가루와 소금 젓갈을 구비한다.
30대 미혼 여자로 수년 동안 김장을 해 본 결과, 김장값은 최소 100만 원은 드려야 한다. 우리는 몇 포기 안 먹어요 해도 김장을 시작하는 순간 일이다. 설사 본인들이 김장을 안 먹더라도 부모님은 김장을 드시는데, 부모님 1년 양식 마련해 드린다 생각하고, 용돈 드리면 될 일이다. 부모님 드시는 건데 박하게 굴진 말자.
#핸드메이드케이크, #수제케이크, #리미티드케이크
일 년에 단 하루, 크리스마스 케이크엔 좋아요를 수만 개 누르고, 10만 원도 우습게 쓰면서, 일 년 양식 김장엔 ‘좋아요’가 왜 이리 없는지 씁쓸하다. 찐 핸드메이드! 맘 리미티드 김장의 가치가 올라가길 바라며, 김장하시는 분들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