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센스 있는 놈이 좋아’
‘센스 있는 놈은 개뿔’
아직도 백마 탄 왕자 기다리는 서른세 살 철없는 딸내미 때문에 우리 엄만 오늘도 속이 터진다. 난 눈이 이상하게 높다. 남들처럼 재력, 외모 물론 다 보지만 그걸 다 제치고도 센스 하나만 있는 놈이면 평생 사랑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젠 이 센스의 기준이 아주 요상하다.
예를 들면 집에 데려다주는 남자가 좋다. 여기서 그냥 집에 데려다만 주면 안 된다. 아파트 입구까지 들어오는 건 부담스럽고, 그냥 주차장에서 나 엘리베이터 타는 거까지만 봐주는 사람이 좋다. 현관문을 하나로 센스와 답답의 차이가 갈린다.
나도 여자라 꽃 선물이 좋다. 근데 이 꽃 선물에도 요령이 있다. 그냥 꽃집에서 막 사온 날것의 꽃은 싫다. 예약해서 받아온 꽃이 좋다. 적어도 예약하려면 꽃집 홈페이지를 찾아야 하고 거기서 디자인을 고르고, 번호를 찾고, 데이트 시간까지 고려해 꽃을 예약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좋다.
내가 어떤 책 얘기를 했을 때 바로 얘기가 통하면 베스트지만, 그다음에라도 그 책을 읽고 나와 함께 대화를 할 수 있는 남자가 좋다. 길을 걸을 때 차가 오면 영화처럼 확 잡아당기지 말고, 슬며시 내 옆으로 와 차도를 가로막아주는, 부담스럽지 않은 따스한 배려가 좋다.
써놓고 보니 내가 원하는 남자는 간단하다. 난 빠릿빠릿하게 성의 있는 놈을 원한다. 남자들이 흔히 하는 착각들 중 하나는 무조건 매너 있으면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것. 하지만 이 매너에도 경중이란 게 있다. 매력 발산하려고 상대방 의중은 살피지 않고 무조건 드라마에서 본 데로 매뉴얼 1,2,3번을 하는 건 매너가 아니라 부담이고 예의 없음이다. 매너가 보여주기 위한 예절이라면, 퍼포먼스를 하기 전 상대방을 살피는 게 우선이다.
센스란, 상대방 속도에 맞춰 같이 걸으면서 배려해 주는 거다. 결국 이 배려는 관심에서 나오는데, 평소 저 여자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지, 오늘 기온은 괜찮을까 정말 세밀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배려가 키워진다. 물론 내가 이 조건을 얘기하기도 전에 우리 엄마는 소릴 질렀지.
‘대충 맞춰 살아, 가르치며 사는 거야!’
어떻게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가르치며 살 수 있단 말인가? 나에게 관심 좀 가져줘, 혹은 ‘너 매너를 다시 배워야 할 거 같아’라고 말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칠 순 없지 않은가? 물론 마음은 순수 100프로라도 너무나 순박해 요령이 없는 경우가 있는데, 뭐 이것도 어쩔 수 없다. 난 엄마가 아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칠 순 없다.
물론 내가 바라는 게 많을 순 있다. 근데 나도 원하는 만큼 베푼다. 배려와 물질 모두 갖춰서 동등하게 돌려준다. 사랑은 기브 앤 테이크니깐. 난 사랑을 하면 무척이나 치열하게 하는 편이다. 그 사람의 셔츠 하나를 사는데도 백화점 두세 번은 가는 정성을 쏟고, 그 사람의 말 한마디도 하나하나 기억해서 신경 써 주려 노력한다. 아니 자동으로 그게 된다, 사랑하니깐.
나도 그를 섬세하게 사랑하듯, 그도 나를 섬세하게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어디 센스 있는 놈 없나? 없을까? 아, 이렇게 쓰니 노처녀 같아서 굉장히 짜증 난다. 그래도 평생 비혼으로 늙어 죽을지라도 서두르지 않으련다. 치열하게 사랑하려면 공 들여 찾는 노력도 필요하니깐.